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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물단지’ 된 꽃사슴… 결국 총까지 드는 제주도

조선일보 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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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물단지’ 된 꽃사슴… 결국 총까지 드는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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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야생동물로 지정, 포획 허용
지난해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발견된 야생 꽃사슴./기후에너지환경부

지난해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발견된 야생 꽃사슴./기후에너지환경부


“겨울만 되면 먹을 게 없다 보니 민가로 내려와 농작물을 헤집고, 집 근처엔 똥까지 싸 놓고 가요. 난리도 아니에요.”

인천 옹진군 굴업도에서 17년째 살아오며 숙박업을 하는 이해왕(60)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씨가 말한 골칫거리는 ‘꽃사슴’이다. 굴업도에는 현재 꽃사슴이 178마리 서식 중이다. 1980년대 개인이 키우던 꽃사슴 7~8마리가 울타리를 뛰어나간 뒤로 이렇게 불어났다는 것이다. 면적당 분포 밀도를 고라니와 비교하면 15배 이상 높다. 사슴들은 떼 지어 다니며 나무껍질을 뜯어먹고 뿌리까지 파먹으며 지역 군락을 망치고 있다. 굴업도 주민 이신숙(63)씨는 “예전엔 숲이 우거지고 매미 소리도 들렸는데, 이젠 비만 오면 흙이 유실돼 산이 엉망이 된다”고 토로했다.

인천 옹진군 굴업도 사슴/기후에너지환경부

인천 옹진군 굴업도 사슴/기후에너지환경부


꽃사슴 때문에 골치를 썩는 곳은 굴업도만이 아니다. 1960년대 일본·대만 등지에서 들여온 꽃사슴은 축산업자 등이 유기하면서 전국으로 퍼졌다. 이 바람에 최근 제주특별자치도는 꽃사슴을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야생 꽃사슴을 포획·사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해발 200~600m 지역인 한라산 중산간 일대에서 서식하는 꽃사슴 약 250마리가 문제가 됐다. 주민 200여 명이 사는 전남의 안마도는 야생 꽃사슴이 937마리까지 불어나 주민들이 홍역을 앓고 있다. 전남의 완도 당사도는 관광 자원 목적으로 방목한 7마리가 600여 마리로, 고흥 소록도는 1992년 한센인을 위로하려 방사한 4마리가 약 230마리로 불어났다. 충남 당진 난지도(34마리), 경남 창원 우도(30마리) 등도 상황이 비슷하다.

외딴섬에서 수를 불린 꽃사슴은 내륙으로도 번지고 있다. 속리산·계룡산 같은 국립공원은 물론 충남 태안 안흥성 마을, 전남 순천 봉화산 등지에서도 꽃사슴이 출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섬 지역은 번식 범위가 제한적이었지만, 내륙은 행동 반경이 넓어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꽃사슴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작년부터 국립생태원에 드론과 무인 센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꽃사슴으로 인한 생태계 영향과 피해 현황 조사에 착수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정부·지자체 꽃사슴 단속에 “유해 야생동물 지정은 살처분을 정당화할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 단체는 행정소송까지 예고했다.

[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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