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박싱데이 |
12월 26일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며 이 칼럼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 지난 크리스마스는 한국인에게 이미 희미한 추억이 되었겠지만 영국에서 성탄절 다음 날은 거의 모든 회사와 학교가 문을 닫는 ‘박싱 데이(Boxing Day)’이다.
박싱 데이는 참으로 요상한 기념일이다. 영국인과는 사촌뻘인 미국인도 왜 영국에서 박싱 데이를 기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럴 만도 하다. 1800년대 중반부터 공휴일이 되어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휴일 중 하나지만 영국인조차도 왜 이날을 기념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역사가들은 이름조차도 아리송한 박싱 데이의 유래에 대한 여러 가설을 만들어 왔다. 그중 하나는 크리스마스 ‘상자(box)’에서 유래했다는 의견이다. 귀족들은 크리스마스에 친지나 지인을 초대해 성대한 만찬을 즐겼고, 따라서 하인들은 하루 종일 진귀한 재료로 음식을 만드느라 성탄절에도 가족과 함께할 수 없었다. 이에 귀족들은 성탄절 저녁이 되면 하인들이 남은 음식을 상자에 가득 담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26일만큼은 휴가를 주어 상자에 담긴 음식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른 가설도 많다. 소작농이나 가난한 이들은 26일이 되면 나무 상자를 들고 자신들이 1년 동안 일한 고용주나 지주의 집을 찾아다니며 소소한 사례금을 요청했다는 설도 있고,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풀던 날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가 하면 1년 중 가장 큰 박싱 경기가 열리던 날이라는 색다른 해석도 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영국인은 2025년에도 여전히 박싱 데이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대부분의 영국인은 과식과 과음, 많은 가족이 오랜만에 모였을 때 일어나는 드라마들로 가득한 성탄절에서 회복하는 데 매진한다. 박싱 데이는 영국에서 가장 요상한 공휴일이지만, 내가 한국에 살 때는 가장 그리운 날이기도 했다. 12월 26일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은 아무리 애써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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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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