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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환율 급락, 안정 신호일까 한계 신호일까

아주경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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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환율 급락, 안정 신호일까 한계 신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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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큰 폭으로 내려왔다. 정부의 구두 개입과 세제 패키지 발표 직후 환율은 전 거래일(23일) 대비 1.3원 오른 1,484원으로 출발한 뒤 1,449.8원으로 어제 마감했다. 하루 낙폭은 33.8원으로, 3년 1개월 만의 최대 하락 폭이다. 표면적으로는 ‘정책 효과’가 확인된 장면이다. 그러나 이 움직임을 곧바로 안정 신호로 해석하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번 환율 하락은 정책의 강력함이라기보다, 정책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의 범위를 시장이 한 번에 확인한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실에서 국장급까지 이어진 연쇄적 구두 개입, 세제·헤지·금융상품을 총망라한 대응은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추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적이다”라는 신호로 읽힐 여지도 있다.

정부가 내놓은 ‘국내 투자·외환 안정 세제 지원 방안’은 분명 파격적이다. 이른바 ‘서학개미’의 자본 리쇼어링을 유도하기 위해 해외 주식을 매도해 국내 주식에 1년간 투자할 경우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를 면제하고, 개인투자자용 선물환 매도 상품을 출시하며, 해외 자회사 배당금에 대한 과세도 유예했다. 해외 투자 자금을 국내로 되돌려 환율 안정과 증시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하겠다는 설계다.

다만 이 대책은 환율을 움직이는 근본 변수라기보다, 자금 흐름이라는 결과 변수의 ‘순간적 방향’을 조정하는 데 가까운 처방이다. 1,600억 달러를 웃도는 해외 주식 보유 잔액 가운데 세제 혜택만으로 국내로 유입될 자금 규모는 불투명하다. 미국 시장에 대한 신뢰, 이미 상당 폭 오른 국내 자산 가격, 뚜렷한 대체 투자처의 부재라는 구조적 제약도 여전하다. 매도 금액 5,000만 원 한도와 1년 한시라는 조건 역시 정책 효과의 범위를 제한한다.

환율은 정책의 관리 대상이기 이전에 경제의 체력과 신뢰를 반영하는 지표다. 올해 원화 가치는 엔화와 함께 주요 통화 가운데 상대적으로 큰 폭의 약세를 보였다. 이는 단기 수급이나 투기적 움직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성장 둔화, 재정 운용에 대한 불확실성, 중장기 산업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데이터를 놓고 보면, 한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환율에는 분명한 현실적 범위가 있다. 수출 채산성, 수입 물가, 외채 상환 부담을 종합할 때 급격한 환율 변동은 상승이든 하락이든 비용을 키운다. 중요한 것은 특정 환율 숫자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준이 시장에 ‘안정적이라고 인식될 수 있느냐’다.


이 지점에서 정책의 초점은 달라져야 한다. 환율을 하루 이틀 눌러두는 것이 아니라, 왜 자본이 국내에 머물지 않으려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에서 확장 재정에 대한 신호는 더욱 정교할 필요가 있다. 재정 지출 확대 그 자체보다, 그것이 어떤 성장 경로와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지 않으면 통화 가치는 먼저 반응한다.

정부는 환율을 ‘관리해야 할 숫자’가 아니라, 경제 전반에 대한 시장의 평가서로 읽을 필요가 있다. 세제 완화와 구두 개입은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어도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자본이 국내에 머물 이유, 한국 자산을 장기적으로 보유해도 된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환율 불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환율이 내려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번 움직임은 정책의 성공 신호인가, 아니면 정책의 한계를 확인한 뒤의 숨 고르기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환율 안정은 언제든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ChatGPT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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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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