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평 살며 1억7000만원 기부... ‘오뚝이 아저씨’가 사는 법 : zum 뉴스

[2025 아너 소사이어티] [3] 유호경 청풍소방안전공사 대표

사랑의열매에 1억 원 기부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유호경 씨가 15일 충북 제천시 청풍소방안전공사 사무실에서 소방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덕분에 일 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지난 16일 유호경(56) 청풍소방안전공사 대표의 사무실 책장 맨 위엔 손바닥만 한 황색 카드가 펼쳐진 채 서 있었다. 그가 쌀과 학용품 등을 종종 보냈던 충북 제천의 한 보육원의 여자아이가 2년 전 이맘때 보내온 연하장이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연하장엔 ‘늘 저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고맙다’고 적혀 있었다.

유 대표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 총 1억7000만원을 들여 충북 제천 및 단양 소재 한부모가정과 보육원 등의 아이들에게 가방과 교복·신발을 사주고,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2023년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유씨는 “어려운 아이들이 ‘누군가는 나를 돌보고 있다’고 믿게 된다면 주저앉지 않고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기부를 해왔다”고 했다.

그의 청춘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제천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법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청주고로 유학을 간 그는 첫 시험에서 학급 1등을 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먼 친척 집에서 통학하며 도시락도 싸 오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점심때 혼자 나가 수돗물을 먹으니 친구들이 도시락을 하나씩 더 싸 갖고 와 챙겨줬다. 유 대표는 “힘들 때 받는 도움이 이렇게 소중하구나, 나도 나중에 꼭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그때 다짐했다”고 했다.

등록금도 제대로 못 낼 처지가 되자 그는 고교 졸업 후 입대했다. 1991년 제대 후 대입을 준비하려 했지만 부모님을 돌봐야 해 자동차 생산 공장에 취업했다. 그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서른 살 때 사표를 내고 서울 신림동으로 가서 감정 평가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합격 후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루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몇 달도 안 돼 낙향했다. 그간 모은 돈을 맡겼던 사촌 누나가 잠적한 것이다. 전기 공사 업체에 취업한 그는 소방 시설 관리사 자격증을 딴 뒤 2018년 수중에 쥔 8000만원으로 고향인 제천에 지금의 소방 안전 관리 업체인 청풍소방안전공사를 차렸다.

사업 시작 후 몇 달은 영업 실적이 ‘제로(0)’였다. 그는 “사람 눈도 못 쳐다볼 정도로 소심한 성격이어서 건물주들 앞에서 말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렸다”며 “차 안에서 혼자 웃으면서 농담하는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고 했다. 서서히 고객이 늘었고, 지금은 직원 7명을 채용하고 있다.

그는 2019년 겨울 제천의 한 행정 복지 센터를 찾아 첫 기부를 했다. 엄마가 혼자 네 살 딸을 키우고 있는 가정,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인 가정의 아이 등에게 390만원을 전달했다. 그는 “제가 번 돈을 아이들이 쓴다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고 했다. 매년 기부액을 늘려 2023년에는 5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속옷 사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며 “속옷은 남의 것을 받아 입기 어렵고, 떨어진 속옷이 작기까지 해서 몸에 끼면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든다. 제가 겪어봐서 안다”고 했다.

유 대표는 현재 보증금 200만원, 월세 46만원의 13평 원룸에 살고 있다. 미혼인 그는 조만간 첫 ‘내 집’을 마련해 이사할 계획이다. 주변으로부터 “돈도 많이 못 벌면서 기부하지 말고 노후 준비나 잘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유 대표는 “2년 전 교통사고가 났는데, 죽었구나 싶은 순간에 ‘기부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며 “사업을 열심히 키워 1년에 1억원을 기부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공동 기획: 조선일보사·사랑의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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