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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테크닉” 혹평… 흑백요리사 탈락으로 본 ‘분자요리’

조선일보 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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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테크닉” 혹평… 흑백요리사 탈락으로 본 ‘분자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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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오래된 미식 트렌드
안성재 심사위원 “생사과가 더 맛있어”
요즘 다양성 유행에 한식도 인기
흑백요리사2에서 분자 요리 기법으로 사과 요리(아래 사진)를 만드는 ‘요리과학자’ 신동민 셰프./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서 분자 요리 기법으로 사과 요리(아래 사진)를 만드는 ‘요리과학자’ 신동민 셰프./넷플릭스


“생사과가 제일 맛있었어요. 굉장히 오래된 테크닉에서 크게 변함이 없었고 임팩트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안성재 셰프의 평가는 작년보다 매서웠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2′ 1화에서 분자 요리 기법으로 사과 디저트를 낸 ‘요리과학자(신동민 셰프)’를 두고 한 말. 신 셰프는 설탕 공예로 빨간 사과 모양 틀을 잡았다. 다진 사과를 버터에 볶고 얼리고 빻은 뒤 속을 채웠다. 사과 아닌 사과가 탄생했다. 뜨거운 사과잼, 과육과 껍질로 만든 사과 젤리를 곁들여 다양한 온도와 식감을 만들어냈는데 혹평을 들은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세계 미식계를 이끌었던 ‘분자 요리’는 안 셰프 말대로 지나간 트렌드가 맞다. 일각에선 그의 사과 디저트가 오랜 해외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분자 요리는 죄가 없다. 미식(美食)의 큰 흐름 속에서 이를 볼 필요가 있다.

흑백요리사 사과 분자 요리/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사과 분자 요리/넷플릭스


분자 요리는 말 그대로 ‘분자 단위까지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만드는 요리’라는 뜻이다. 식재료를 쪼개고 성질을 바꿔 겉보기와 완전히 다른 맛을 낼 때가 많은 게 특징. 예컨대 달달한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먹어 보면 짠 고기일 때도 있다. 2011년 문을 닫은 스페인의 전설적 레스토랑 ‘엘불리’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일했던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최정윤 한국 지역 의장은 “분자 요리는 음식이 얼마나 창의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혁명적 변환점”이라며 “미식의 경험을 새로 설계하기 위해 과학을 도구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후 분자 요리 트렌드가 시들해졌다. 이후 2010년대부터 ‘노르딕 퀴진’이 대세가 됐다. 덴마크의 세계적 레스토랑 ‘노마’를 필두로 하는 이른바 북유럽식 자연주의 요리법이다. 현지의 제철 식재료로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미식의 변방’으로 무시당하던 덴마크가 세계 미식의 성지로 주목받게 됐다.

현재의 화두는 ‘다양성’이다. 영화·드라마 등 여러 문화 콘텐츠에서 부는 다양성의 물결이 음식에도 일고 있다. 소셜미디어, OTT 등으로 세계가 연결되며 곳곳의 음식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한식 붐도 이 물결 덕을 봤다. 유럽 일변도 미식에 대한 자성도 반영됐다. 올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1위도 유럽이 아닌 남미 페루의 식당 ‘마이도’가 받았다. 페루의 전통 식재료와 일본 이민자들의 섬세한 기술이 결합된 곳이다. 다양성의 흐름은 ‘노마’도 바꾸고 있다. 노마 수석 고문이 쓴 신간 ‘풍미의 과학’(푸른숲)도 “노마는 가급적 북유럽 고유의 식재료로만 음식을 만들려 했으나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일본산 다시마, 멕시코산 고추 등도 쓰게 됐다”고 했다.


강지영 음식 평론가는 “그 나라에 가보지 않아도 먼 나라의 음식을 디테일하게 알 수 있게 되면서 셰프들이 전 세계에서 다양한 영향을 받고 있다”며 “오랫동안 쌓인 한식의 우수함 또한 다양성의 흐름에 올라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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