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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는 여섯 쌍둥이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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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는 여섯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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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트로폴리탄전 빛을 수집한 사람들]
6점 중 2점이 현재 한국 전시 중… 손 각도·화병 모양 등 서로 달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에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1892)가 걸려 있다. 캔버스에 유화. 111.8×86.4cm.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에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1892)가 걸려 있다. 캔버스에 유화. 111.8×86.4cm.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피아노 앞 소녀들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배경은 부유하고 따스한 가정집 실내. 의자에 앉은 금발 소녀는 왼손으로 악보를 쥐고 오른손으로 피아노를 친다. 다정하게 그녀를 에워싼 갈색 머리 소녀는 오른손을 의자 등받이에 짚었고 왼팔은 피아노에 기대어 있다. 발갛게 상기된 뺨, 찰랑이는 머릿결, 옷자락에 반사된 빛까지 마치 하나의 화음처럼 어우러진 그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명작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1892)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그림이다. 맥스 홀라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장도 한국 관람객들이 꼭 봤으면 하는 단 한 점으로 이 작품을 꼽았다. 홀라인 관장은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들은 미술사의 전통적인 주요 주제였지만, 르누아르는 당시 부르주아 가정의 매력적인 소녀들을 포착해 이 주제를 재해석했다”며 “프랑스 정부가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가에게 의뢰해 그려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혁명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된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1892). 캔버스에 유화, 116×90cm. /오르세미술관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된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1892). 캔버스에 유화, 116×90cm. /오르세미술관


1891년 르누아르는 당시 프랑스 미술부 장관으로부터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던 뤽상부르미술관에 걸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는 ‘마이너’에 머물러 있던 인상주의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중대 사건이자, 프랑스 대중이 그만큼 인상주의를 포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시 르누아르는 제법 성공한 화가였지만, 정부의 심사가 얼마나 까다로울지 아는 그로서는 주제에서 구도까지 완벽한 작품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여러 캔버스에 같은 구도를 반복·변주했고, 소녀들의 의상과 색채, 포즈, 배경을 조금씩 바꿔가며 작업을 계속했다. 이듬해 그는 6점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를 남긴다. 4점은 유화 완성작, 1점은 유화 스케치, 1점은 파스텔화다. 이 작품은 유화 완성작 4점 중 하나로, 르누아르와 오랜 우정을 나눴던 화상 폴 뒤랑 뤼엘이 구입했다가 1948년 로버트 리먼 컬렉션이 됐고, 리먼 사후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기증됐다. 또 다른 유화 완성작 중 당시 프랑스 정부가 선택한 그림은 현재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유화 스케치는 프랑스 오랑주리미술관, 나머지 3점은 개인 소장품이다.

프랑스 오랑주리미술관에 소장된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1892). 캔버스에 유화 스케치. 116×81cm. /오랑주리미술관

프랑스 오랑주리미술관에 소장된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1892). 캔버스에 유화 스케치. 116×81cm. /오랑주리미술관


흥미롭게도 6점 중 3점이 지금 아시아에, 그것도 2점이 한국에서 전시 중이다.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과 서울 예술의전당 특별전에 각각 오르세와 오랑주리 소장품이 나와 있다. 얼핏 같은 그림으로 보이지만, 비교하면 소녀의 손 각도와 화병 등 다른 점이 보인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오랑주리미술관 소장품은 습작이라 완성본은 아니고, 오르세본과 메트본은 비슷해 보이지만 색감 차이가 있다”며 “오르세본은 노란색조가 강해서 오후에 햇살이 많이 들어올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메트본은 푸른색조가 있어 아침 시간대에 그린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했다.

“그림은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르누아르는 일상 속 인물들을 사랑스럽게 화폭에 옮겼다. 말년에 심한 관절염으로 붓을 쥘 수 없을 때에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고 했다. 성탄절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그가 남긴 아름다움에 눈을 맞춰보면 어떨까. 밝고 풍만한 색채와 빛, 행복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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