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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받은 장학금 환전하니 100달러 사라져"…유학생 직격

중앙일보 장원석.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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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받은 장학금 환전하니 100달러 사라져"…유학생 직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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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보통 커피와 바나나로 해결하는 직장인 정모씨는 예전보다 식사값이 부담스럽다. 출근길에 매일 들르는 회사 앞 커피집에서 최근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렸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는 바나나 한 송이 값도 예전엔 3000원 안팎이었는데, 요즘 5000원을 훌쩍 넘는다.

기름값도 비싸졌다. 국제유가가 내렸다는데 휘발윳값은 여전히 L당 1740대 중반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일할 때 쓰는 인공지능 플랫폼 구독 서비스 금액도 마찬가지다. 매달 20달러가 자동으로 결제되는데, 원화 기준 결제금액을 이달 문자로 받고 놀랐다. 정씨는 “3만원 가까운 금액이 찍혀있어서 공지도 없이 업체에서 가격을 올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올해 초중반만 해도 20달러가 2만원대 중반이었는데, 환율 때문에 원화 환산 금액이 뛴 것이었다”고 말했다.

22일 남대문시장에서 상점 주인 안모(73)씨가 자신이 파는 수입 치즈·육류·빵 등을 정리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22일 남대문시장에서 상점 주인 안모(73)씨가 자신이 파는 수입 치즈·육류·빵 등을 정리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정씨의 불만엔 이유가 있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원화값은 전 거래일(1480.1원)보다 3.5원 하락한(환율은 상승) 1483.6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가치는 전날 1차 저항선으로 꼽았던 1480대를 뚫은 뒤 연이틀 하락했다. 연고점인 6월 30일(1350원)과 비교하면 6개월 새 10%가량 원화가치가 내렸다. 원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대표적인 게 외국산 과일이다. 정씨가 즐기는 바나나 소매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15.8%(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상승했고, 파인애플도 20%가량 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1월 수입물가지수는 한 달 전보다 2.6% 상승해 1년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중 커피 수입물가지수는 불과 넉 달 사이 28.8%(원화 기준)나 뛰었다. 커피콩 시세 급등과 가파른 원화가치 하락이 맞물린 결과다. 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원두 가격이 대략 2배 정도로오른 것 같다”며 “그렇다고 커피값을 계속 올릴 순 없으니 지난달 겨우 200원(아메리카노 기준) 올렸는데 손님에도 미안한 상황”이라고 했다.

국제유가와 따로 움직이는 기름값도 환율 영향이 적지 않다.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22일 두바이유는 배럴당 61.2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연초(75.18달러) 대비 18.6%가량 가격이 하락했다. 하지만 같은 날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736.48원으로 연초(1672.68원) 대비 3.8% 상승했다. 국제 거래 시장에서 정유사는 달러로 원유를 사 온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국내 소매가격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환율 탓에 정작 국민은 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하락 효과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을 둔 윤모씨는 요즘 딸의 전화가 두렵다. 결국 통화의 끝은 용돈을 더 보내달라는 얘기여서다. 윤씨는 “환율 때문에 송금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며 “딸이 미국 있을 때 1년에 두 번씩은 들르자고 아내와 얘기했었는데 현실적으로는 한 번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학생 입장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에 다니는 강모씨는 “한국의 한 재단에서 원화로 장학금을 받아 여기서 달러로 환전한다. 이번달에는 지난 여름 때보다 100달러 정도가 줄었다”면서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가고 있고, 한국에서 안쓰던 가계부까지 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원화가치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상인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22일 찾은 남대문시장 수입상가에는 상인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수입 영양제와 향수 등을 판매하는 신모씨는 “수입사에서 물건 떼올 때 달러값을 반영해서 계산하기 때문에 파는 가격도 비싸질 수밖에 없는데 그냥 돌아서는 손님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수입 치즈와 육가공품을 판매하는 안모씨는 “1년 반 전에 1만8000원에 팔았던 치즈를 지금은 3만원에 판다”며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은 아무래도 가성비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부담이 너무 크다”고 불평했다. 수입 과자 등을 취급하는 이모씨는 “지난달부터 손님이 확 줄어 이달엔 물건 떼올 돈조차 모자라 고생했는데 주변 상인들 대부분 같은 처지”라며 “일단 이달엔 매입량을 줄이고 재고 처리부터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남수현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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