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2차 공판이 열린 지난 2021년 2월 1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앞에서 시민들이 양부모 사형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뉴스1 |
헌법재판소가 ‘정인이 사건’을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 담당 PD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는 보도이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23일 헌재는 “담당 PD의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보도금지의무 위반) 혐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은 중대한 법리 오해 또는 수사 미진에 해당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지난 18일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2021년 1월 ‘정인이는 왜 죽었나,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편과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우리의 분노가 가야할 길’ 편을 통해 정인이가 양부모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해 숨지게 된 사건을 보도했다. 방송 이후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정인이 얼굴이 나온 사진과 생년월일 등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담당 PD를 그해 10월 고발했다.
검찰은 2023년 6월 담당 PD에게 보도금지의무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는 불기소 처분의 일종으로 혐의가 인정하되 검사가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담당 PD는 “범죄 성립을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같은 해 9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담당 PD의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피해 아동의 사진 등을 보도한 청구인(담당 PD)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됐다고 할 수 없음에도 검찰이 범죄 성립을 전제로 기소유예를 한 것은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해당 방송은 피해 사실을 그대로 전달해 시청자들이 직접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하고 전문가의 검증을 받았다”며 “가족관계나 학대 경위를 설명하는 외에 주변인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흐린 화면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보도로 인해 피해 아동의 사생활이 무분별하게 노출되거나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이미지로 소비된 정황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방송은 지속적,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아동학대 범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가해자의 범행 내용에 부합하는 처벌을 촉구하는 한편, 아동학대 범죄의 예방 방안 등을 공론화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으로 제작됐음이 인정된다”며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권 행사로서의 의미도 가진다”고 했다. 실제 방송 이후 가해자는 살인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35년형이 확정됐고, 아동학대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법령이 정비되는 등 제도적 보완도 뒤따랐다.
헌재는 또 해당 보도가 오히려 피해 아동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봤다. 헌재는 “사건의 진상이 충분히 조사되고 규명돼 가해자가 책임에 부합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 아동학대로 사망한 피해 아동의 입장에서 가장 큰 이익”이라며 “입양 전 피해 아동을 돌본 위탁 가정의 위탁모는 피해 아동을 추모하고 아동학대의 전모가 정확히 밝혀지길 원하면서 피해 아동의 입양 전 모습을 공개하는 데 적극 협조한 사실도 있다”고 했다.
[오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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