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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백약이 무효 원화 폭락, 한국 경제 미래 있는지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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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백약이 무효 원화 폭락, 한국 경제 미래 있는지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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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전거래일 대비 4.40원(0.30%) 상승한 1,480.70원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외환시장 폐장일(12월 30일)을 앞두고 연평균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1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전거래일 대비 4.40원(0.30%) 상승한 1,480.70원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외환시장 폐장일(12월 30일)을 앞두고 연평균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1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하고 수출 기업에 달러를 풀라고 권고하는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어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3.8원 오른 1480.1원으로 마감해 8개월 만에 1480원 선을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의 최고치였던 4월 9일의 연고점(1484.1원)에 근접한 수준이다. 외국계 시중은행의 달러 보유 한도를 대폭 높이는 추가 대책도 환율 오름세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환율은 지난 9월 30일 1400원대로 올라선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1400원대에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시장에선 조만간 1500원 선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건국 이래 환율이 1500원을 넘은 것은 IMF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두 차례밖에 없었다.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환율 불안이 계속된다면 진단과 처방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원화 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하는 가장 큰 원인이 국민연금과 ‘서학 개미’의 해외 투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나온 처방도 국민연금과 개인 투자자가 해외 투자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단기 대책 중심이었다. 정부가 소비 쿠폰을 비롯한 각종 포퓰리즘 정책으로 돈을 풀었고,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지적엔 귀를 닫았다.

근본 대책에도 소홀했다.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의 거울이다. 원화 가치 하락은 그만큼 한국 경제의 체력이 약해졌다는 의미다. 뼈를 깎는 구조 개혁으로 1%대 성장률에 허덕이는 저성장 기조를 끌어올리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정부는 단기 대증 요법만 내놓고 있다.

현재의 글로벌 시각에서 한국은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할 수 없다. 강성 노조가 정치 권력을 등에 업고 득세하고 있고, 유망한 신산업은 전부 기득권과 규제에 막혀 있다. AI 시대 핵심인 전력 문제조차 탈원전 망령에 가로막혔다. 노란봉투법과 경직적 주 52시간제 등 반기업·친노조 정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국회에 상정되고 있다. 그러니 2021년부터 4년 연속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며 늘어났던 외국인의 국내직접투자(FDI)가 올 들어 전년 대비 18% 급감했다. 외국인이 주식뿐 아니라 실물 투자도 주저하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이미 1%대로 추락했다.

결국 원화 가치를 지키는 힘은 한국 경제의 매력도에서 나온다. 경제 체질 개선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단기 대책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노동·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한다. 한국 미래에 대한 희망이 커지면 서학개미뿐 아니라 외국인도 제 발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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