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 34년에 매립은 40%
지금까지 든 돈 15조
향후 더 들 돈 “계산 불능”
“헛된 희망은 좋지 않아,
정리할 부분 정리해야“
이 대통령의 놀라운 발언
지금까지 든 돈 15조
향후 더 들 돈 “계산 불능”
“헛된 희망은 좋지 않아,
정리할 부분 정리해야“
이 대통령의 놀라운 발언
새만금국제공항 조감도.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월 조류 충돌 위험, 갯벌 생태계 파괴 등을 이유로 계획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국토교통부는 이에 불복해 현재 법적 공방이 진행 중이다. /전라북도 |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새만금개발청의 업무 보고가 있었다. 같은 날의 인천공항공사(책갈피 달러 반출)와 동북아역사재단(환단고기) 논란에 밀려 주목도는 낮았지만 의미심장한 발언이 있었다. 이 대통령은 방조제 착공(1991년) 후 34년 지났는데도 매립 완료가 40%밖에 안 되고 나머지 매립은 민자를 유치하겠다는 보고에 “실현 불가능한 민자 유치를 전제로 계속 끌고 가는 건 맞지 않다. 정리할 부분은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할 듯 말 듯 앞으로 20~30년을 또 이렇게 애매하게 갈 순 없지 않나. (전북) 도민을 희망 고문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 발언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새만금만 가면 휘황찬란한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노태우의 항만·관광레저단지, 김영삼 산업 거점 기지, 김대중 서해 생산·교역 기지, 이명박의 ‘한국의 두바이’, 박근혜 한중 경제협력특구, 문재인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윤석열의 이차전지 특화 산단 등 화려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주권자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건 좋지 않다”고 한 것이다.
새만금에 대해선 다수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재작년 새만금 국제 잼버리는 물웅덩이 야영장으로 국제 망신을 샀다. 새만금엔 안정화가 끝나 잼버리에 쓸 수 있는 다른 매립 부지들이 있었다. 그랬는데도 굳이 생갯벌을 행사장으로 정했다. 국비를 끌어와 갯벌 매립을 진척시키려는 과욕 때문이었다. 잼버리 사태 당시 전북도의회 녹취록(2017년 11월)을 뒤져보면서 실패의 한 실마리를 확인한 일이 있다. K 의원은 “원래 잼버리 목적은 공항 같은 거, SOC 사업 해결을 위해 유치했던 건데…”라고 했다. L 의원은 “(잼버리 유치는) 항만, 철도, 공항 명분을 위(중앙정부)에 주기 위해, 예산을 빼기 위해 아니겠습니까”라며 질의하고 있었다.
새만금엔 8000억원짜리 국제공항 계획도 있다. 잼버리를 명분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그 공항 계획을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9월 조류 충돌 위험, 갯벌 생태계 파괴 등을 이유로 취소시켜 버렸다. 국제공항 사업은 사전 타당성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479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12일 보고에서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은 2030년까지 수상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5GW를 완공 또는 착공하겠다고 했다가 이 대통령에게 “물리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국내 최대인 해남 솔라시도 태양광단지(98MW·48만평)의 50배 규모를 5년 안에 짓겠다는 것이니 허황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요즘엔 전북 정치권에서 용인의 삼성전자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새만금을 놓고 해수 유통, 조력발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01년 이후 새만금 유역 수질 개선에 4조5000억원이 투입됐지만 호수 수질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두 곳 갑문을 통해 하루 두 번 수분~수십 분씩 외해 바닷물을 넣었다 빼고 있는데 그걸로는 오염 해소에 역부족이다. 새만금 호숫물은 저층과 표층이 밀도 차로 분리돼 좀체 섞이지 않는다. 수심 3~4m 아래는 산소가 닿지 않아 썩어 들어가고 있다. 구정물 호수 옆에 관광 레저 단지, 명품 수변 도시를 조성하긴 어렵다. 오염을 해소하려면 조력발전으로 해수를 대규모로 유통시켜 호숫물을 뒤집어놔야 한다. 여기에 1조원 이상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해수를 대량으로 유입·유출시키려면 방조제 안쪽 수위를 지금보다 높게 관리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려면 수변 도시 등 새만금 개발 규모를 축소시켜야 한다.
올 6월 새만금 정책 토론회에서 오창환 전북대 명예교수는 방조제 착공 전엔 전북 수산업 생산량이 전남의 3분의 1, 충남의 1.5배였는데 지금은 전남의 10분의 1, 충남의 3분의 2로 주저앉았다고 했다. 지난 30년의 누적 손실이 10조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2018년 필자가 같은 계산법으로 ‘새만금 전북 피해 6조원’이란 칼럼을 쓴 일이 있다. 7년 사이 피해 규모가 4조원 늘었다. 오 교수는 파생 손실까지 계산하면 18조원 규모라고 했다. 전북을 살리려는 프로젝트가 전북 경제를 말려 죽이고 있다.
이 대통령 지적대로 새만금은 전북 도민에겐 희망 고문이다. 지금까지 새만금에 15조원을 투입했다. 그 돈을 더 생산적인 곳에 썼다면 전북 경제는 일어섰을 것이다. 앞으로 더 들어가야 할 돈 규모에 대해 이 대통령이 “계산 불가능할 정도로 많지 않냐, 솔직히”라고 묻자 새만금청 차장은 “그렇습니다, 거의”라고 했다. 밑 빠진 독이라는 것이다. 무모한 규모로 일을 벌이는 바람에 착공 34년이 지났어도 매립은 40%에서 지지부진이다. 이 대통령은 새만금 30년 표류를 정리할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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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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