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의 김범석 쿠팡 의장
한국에 대한 감사·애정은 옛말
일 터지자 ‘外人 지위’ 뒤로 숨어
선택적 태도 언제까지 통할까
한국에 대한 감사·애정은 옛말
일 터지자 ‘外人 지위’ 뒤로 숨어
선택적 태도 언제까지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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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탕’이자 ‘코미디’.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청문회에는 선임된 지 일주일 된 미국 국적의 한국 쿠팡 임시 대표가 나왔다. 출석 요구를 거부한 김범석 의장 대신이었다. 그는 “한국어를 몰라 소통이 어렵다”며 시작부터 모르쇠 전략을 폈다. 김 의장의 불참 이유를 묻자 “Happy to be here(여기 나오게 돼 기쁘다)”라며 동문서답을 했다. ‘언어 장벽’을 활용해 소나기를 피해 보려는 게 쿠팡의 의도 아니었을까.
김 의장의 불출석 사유는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로서 공식적인 비즈니스 일정들이 있다”는 것이다. 쿠팡 매출의 90%가 한국에서 나온다. 3370만명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가 현실화했다. 현재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김 의장에게 사태 수습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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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 쿠팡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
‘맹탕’이자 ‘코미디’.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청문회에는 선임된 지 일주일 된 미국 국적의 한국 쿠팡 임시 대표가 나왔다. 출석 요구를 거부한 김범석 의장 대신이었다. 그는 “한국어를 몰라 소통이 어렵다”며 시작부터 모르쇠 전략을 폈다. 김 의장의 불참 이유를 묻자 “Happy to be here(여기 나오게 돼 기쁘다)”라며 동문서답을 했다. ‘언어 장벽’을 활용해 소나기를 피해 보려는 게 쿠팡의 의도 아니었을까.
김 의장의 불출석 사유는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로서 공식적인 비즈니스 일정들이 있다”는 것이다. 쿠팡 매출의 90%가 한국에서 나온다. 3370만명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가 현실화했다. 현재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김 의장에게 사태 수습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그의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2019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전 대통령과 벤처 기업 대표 7명의 간담회에는 참석했지만, 국회 국정감사·청문회 출석 요구는 계속 거절했다. 쿠팡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미국 국적자다.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일했다. 2010년 한국에서 쿠팡 서비스를 시작했고 ‘로켓 배송’을 앞세워 매출 40조원대 회사로 키웠다. 쿠팡의 성장 서사는 ‘한국’이라는 시장과 소비자, 노동력, 인프라 위에서 만들어졌다. 김 의장 스스로도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드러냈다. 2013년 열린 스타트업 콘퍼런스에서 “일곱 살 때까지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꼭 한국에 돌아와서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2021년 쿠팡이 뉴욕 증시에 상장되던 날에는 “한국인들의 창의성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 성공 스토리의 증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한국은 수익 창출의 무대인지는 몰라도, 책임을 지는 터전은 아니었던 걸까. 그는 현재 한국에선 아무런 공식 직함도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한 달 앞둔 2020년 12월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겠다”며 쿠팡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2021년 6월 17일에는 그가 한국 법인 이사회 의장과 등기 이사직에서 물러난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5시간쯤 후였다. 쿠팡은 “김 의장의 실제 사임 일자는 5월 말”이라고 했지만 발표 시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그는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 동일인(총수) 지정에서도 빠졌다.
이번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쿠팡 측은 “한국 법인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김 의장은 법적 책임 밖에 있다는 취지일 것이다. 미국 본사(쿠팡Inc)는 지난달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분기 보고서에서 “우리는 한국 소매 시장을 중심으로, 다른 해외 시장에서도 소매 사업을 소유·운영하고 있다”며 “최고 운영 의사 결정자는 우리의 CEO”라고 했다. 쿠팡Inc의 CEO는 김 의장이다. 한국 쿠팡은 쿠팡Inc가 100% 지분을 갖고 있고, 미국 본사의 의결권 74%를 김 의장이 쥐고 있다. 기업 지배 구조의 허점을 활용해 실질적 오너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 의장이 필요할 때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앞세우고, 책임져야 할 때는 외국인이라는 지위를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권한은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 ‘선택적 태도’가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김 의장은 ‘글로벌 경영’이라는 이름 뒤에 숨지 말고 앞으로 나와 한국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직접 답해야 한다.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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