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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로 도망친 여성…19년 만에 드러난 ‘무속인 심리지배’ [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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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로 도망친 여성…19년 만에 드러난 ‘무속인 심리지배’ [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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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2023년까지 일가족에 범행
피해자 집 냉장고에 자물쇠 걸어 통제하고
방에 반려묘 살도록 해, 피해자는 부엌생활
폭행 못 견딘 자녀가 도망치며 범행 드러나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23년 12월 22일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특수상해교사, 강제추행, 공갈, 감금,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부부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피해자들을 심리 지배하고 상호 폭행하게 한 뒤 수억원을 뜯어낸 이들에게 중형이 구형된 것이었다. 19년간 이뤄진 부부의 범행은 어떻게 드러나게 된 것일까.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


19년간 일가족 생활 통제…상호 폭행 지시도

사건이 처음 발생한 시점은 2004년이었다. 피해자 A씨는 남편이 숨지고 한 무속인에게 의지해 지내던 중 용한 박수무당이라며 B씨를 소개받았고 B씨의 사실혼 관계인 보살 C씨와 친분을 쌓게 됐다. 이후 B씨 등은 A씨의 세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피해자의 집에서 굿을 하고 밥을 먹이거나 청소를 해주며 환심을 샀다. 또 A씨와 자녀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마음에 안 든다’며 A씨에 대한 폭행을 일삼았다. 세 자녀에게는 어머니를 폭행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으며 보일러가 차단된 창고에 A씨를 가두는 등 수법으로 일가족을 분리했다.

B씨 등은 2013년부터 A씨 가족들이 쓰는 냉장고에 자물쇠를 설치해 자신들이 집에 없는 동안에는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자녀들의 친구 관계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또 자신들의 반려묘를 피해자들 방에 한 마리씩 배정하고는 A씨 가족들은 부엌에서 모든 의식주를 해결하도록 했다. 2022년부터는 ‘고양이들이 마당을 드나들어야 한다’며 부엌의 여닫이문을 없애고 마당과 연결된 상태에서 한겨울 추위를 느끼도록 만들었다.

범행이 이뤄지던 와중 A씨 자녀 중 한 명이 통제를 힘들어하고 밖에서 배회하자 이들은 피해자를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A씨의 자녀가 계속 저항하자 이들 부부는 남매들의 휴대전화에 실시간 위치 공유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모든 동선을 감시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피해자 중 한 명이 도망쳤을 때는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리고 집 밖의 생활도 통제하기 시작했다.

B씨 등의 범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2020년께부터 피해자들의 집에 CCTV를 설치하기 시작해 2023년에는 13대의 CCTV로 일가족을 감시했다. 특히 남매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대출을 강요하고 급여통장을 가져갔으며 대출금은 자신들의 생활비로 사용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B씨 부부가 빼앗은 금액만 2억 5000만원이었다.

A씨 가족들을 심리지배한 B씨 부부는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상호 폭행을 강요했고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됐음에도 병원에 가지 말 것을 지시했다. 남매 중 한 명은 2018년 11월 결막염 치료를 받은 뒤로 수사기관이 사건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병원 진료를 받지도 못 한 상태였다.


이들의 악랄함은 2023년 4월 남매 중 첫째가 피투성이로 도망친 뒤에야 드러났으며 수사 과정에서는 B씨 부부가 A씨 자녀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法 “인격적으로 말살한 범행”

수사 초기 “모함당했다”고 주장한 B씨 부부는 법정에서 “피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 않았다”며 “경제력을 장악하고 정신적으로 지배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피고인들은 한 가정의 구성원을 정기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넘어 인격적으로 말살한 범행을 저질렀다”며 B씨에게 징역 15년을, 그의 아내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어 “범행 방법이 가혹하고 패륜적이며 피고인들은 수사가 개시됐음에도 피해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등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법정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지 않고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해 피해자들에게 더 큰 절망감을 안겼다”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한 피고인들과 검사는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선고하면서도 1심과 같은 형량을 유지했다.

2심은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들이 한 가정의 구성원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한 것을 넘어 인격적으로 말살한 범행”이라며 “불에 달군 숟가락으로 피해자 몸을 지지게 하는 등의 범행은 가학적이고 패륜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자기 고양이들의 양육을 위해 피해자들 거주지에 다수의 CCTV를 설치했으며, 피해자들이 고양이의 생활 패턴에 맞춰 지내도록 감시하고 통제했다”며 “피해자들에게 감시 없는 일상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대법원이 B씨 측과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며 지난해 10월 형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