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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홈리스를 두려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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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홈리스를 두려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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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본 이라면,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망설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박스 위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거나, 신문을 읽는 홈리스 앞을 지나며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해명되지 않은 감정의 갈피가 개인의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정은 이 감정을 손쉽게 공포와 혐오로 규정한다. 치안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 동대문구는 ‘쾌적한 청량리역 광장 조성’을 명분으로 시민 설문을 진행했다. 광장에 대한 불만족 항목을 묻는 해당 설문에는 노숙인과 쓰레기를 등치시키는 문항이 포함됐다.

서울시는 서울역 광장을 금연·금주 구역으로 지정 및 지정 계획하며, 서울역에 머무는 홈리스를 겨냥한다. 노숙 문제를 술과 연결짓는 진부한 통념의 반복이다. 두려움은 그렇게 제도로 고착된다.

왜 제도화된 두려움 뒤에 누구의 안전은 빠져 있는가. 홈리스 아웃리치 활동을 하며 나는 이 질문을 곱씹었다. 공공 공간의 치안과 안전을 말할 때 홈리스의 안전은 늘 빠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홈리스가 감당해야 할 두려움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을 말이다.

행인들의 발 옆에서 눈 뜨는 아침, 사람이 가득한 대합실에서 오직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경비노동자, 길에서 죽어가는 노숙 동료들, 카메라를 앞세운 유튜버가 박스를 뺏으며 조롱하고 떠난 뒤의 허탈함, 유튜브를 보고 찾아온 어린 학생들의 키득거림, 새우잡이 배·염전·돼지농장, 평생을 일했지만 고시원 월세가 밀려 쫓겨나온 거리. “젊은데 왜 일하지 않고 노숙을 하느냐”는 무지한 비아냥이 그것이다.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남는다. 만약 당신이 사장이라면, 퇴근할 집도 없는 홈리스를 고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정말 무서운 건, 한 사람이 길에 살게 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이 세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홈리스 상태는 빈곤을 방치해온 사회와 작동하지 않은 복지가 길 위에 남긴 결과다. 그러나 이 책임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정부는 공식적인 홈리스 사망 통계를 집계하지 않는다. 2025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서울지역에서 사망한 홈리스는 435명이다. 이 가운데 427명은 무연고 사망자다.

홈리스의 사망률은 한국 인구 평균의 4배에 달하며, 작년 무연고 사망자는 6000명이 넘는다. 노숙인 시설과 쪽방, 고시원, 여관과 여인숙, 그리고 포착되지 않은 거리의 죽음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12월22일,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어둠이 가장 짙어 홈리스의 처지와 닮은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홈리스를 두려워하는 세상 앞에서, 우리만큼은 그들과 함께 서서 두렵지 않은 세상을 열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