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록펠러센터 성탄 트리 |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좀 크리스마스스러운(christmasy) 느낌이 있네요. 선생님들이 좋아하실지 모르겠어요."
연말을 앞두고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마련한 기프트카드를 교사들에게 전달하려는데, 동봉해 보내는 감사 카드 디자인을 보고 다른 학부모가 보인 반응이었다.
색이나 문양이 크리스마스를 상기시키는 디자인이긴 한데, 누군가의 눈에 그게 부적절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결국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크리스마스스러운 느낌이 없는 카드를 다시 준비했다.
한국인 입장에서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해묵은 정치·문화적 논쟁 이슈 중 하나가 바로 '크리스마스 전쟁'이다.
크리스마스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는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홀리데이스' 가운데 무엇을 사용하는가를 두고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비기독교인이 소외감을 느끼게 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보다 포괄적인 표현인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행복한 휴일 보내세요)를 쓰자는 목소리가 있다.
12월 중순 유대인 명절인 하누카부터 성탄절, 새해 첫날 등 연말연초 휴일이 이어지다 보니 뭉뚱그려 해피 홀리데이스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미국의 다른 지역까지는 잘 모르지만, 뉴욕의 경우 해피 홀리데이스가 보편적으로 쓰인다.
직장, 학교, 공공기관 등 공적인 영역에서는 종교 중립적인 표현을 쓰는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그렇다고 뉴욕 사람들이 또 메리 크리스마스를 성탄 인사로 아예 안 쓰느냐, 그런 것은 아니다.
엊그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도 내리면서 내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스러운 느낌의 카드 |
성탄 인사말을 둘러싼 논란이 굳이 '전쟁' 상황으로 비화한 것은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문화 전쟁' 프레임을 씌워 대결 구도를 만든 측면이 있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기 집권 이전부터 '메리 크리스마스'를 되찾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1기 재임 기간 내내 성탄절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부각해 썼고, 올해도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전임 대통령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를 안 썼느냐란 의문이 드는데, 과거 언론 보도를 찾아보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사용했고,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과거에는 해피 홀리데이스를 즐겨 사용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대결 구도를 조성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크리스마스 전쟁이 존재한다는 인식 자체가 정당 지지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여론조사기관 유거브가 최근 미국인을 상대로 수행한 크리스마스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크리스마스 전쟁'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공화당 소속 응답자의 41%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 응답자는 1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인도계 무슬림으로 올해 뉴욕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조란 맘다니는 성탄 인사말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썼을까, 안 썼을까.
뉴욕주 의원이었던 맘다니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이렇게 적었다.
"아스토리아와 롱아일랜드시티(맘다니의 지역구)에서 모든 분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기원합니다."
인사말에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담은 진심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pa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