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마이클 E.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정책연구보고서 '더 안전한 세계을 위한 비전과 정책 의제'
[코스탄티니우카=AP/뉴시스] 러시아 국방부가 제공한 사진에 16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코스탄티니우카 인근에서 러시아군의 ‘그라드’ 자주 다연장 로켓포가 우크라이나 진지를 향해 발사되고 있다. 2025.12.17. /사진=민경찬 |
21세기 전례 없는 위험에 직면한 세계가 글로벌 차원의 정책 협력을 통해 보다 안전한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마이클 E.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정책연구보고서 '더 안전한 세계를 위한 비전과 정책 의제(A vision and policy agenda for a safer world)'에서 "인류는 놀라운 기술적·물질적 진보를 이뤄왔지만, 동시에 그 진보가 초국가적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기존의 국제정치적 사고를 넘어 협력이 가능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핸런 연구원은 인류가 역사적으로 다양한 위협을 극복하며 번영과 성장을 이뤄왔다는 점을 언급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은 중산층 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으며 보건과 복지의 개선으로 극빈층과 영유아 사망률도 크게 감소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라는 극단적 대립 속에서도 강대국들은 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핵실험 제한과 직통 전화(핫라인) 설치 등을 통해 전면전 가능성을 관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는 다시 구조적 위험 국면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요인으로는 강대국 경쟁의 복귀를 들었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는 미·중·러 간 전략 경쟁 구도로 전환됐고, 우크라이나와 대만 같은 지역 분쟁은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 역시 주요 위협 요인으로 지목했다. 인공지능(AI)과 첨단 미생물학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통제되지 않을 경우 인류에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AI는 허위정보와 딥페이크, 고도화된 사이버 공격은 물론 자율 무기와 핵심 기반시설 파괴에 활용될 수 있으며 현대 생명공학은 코로나19와 유사하거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전염병을 설계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특히 AI와 첨단 미생물학이 결합될 경우 새로운 형태의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오핸런 연구원은 이러한 글로벌 위험을 줄이고 보다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네 가지 정책 과제로 △주요 영토 분쟁의 해결 및 완화 △AI·첨단 미생물학·핵무기에서 비롯되는 기술적 위험 감소 △기후변화와 팬데믹 대응 역량 강화 △빈곤 해소와 인간 존엄성 증진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강대국이 얽힌 영토 분쟁을 완화하기 위해 신뢰받는 외부 행위자를 중심으로 한 국제 공조와 중재가 필요하다고 봤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대신 서방이 방어를 보장하는 새로운 안보 구조를 검토할 수 있으며, 대만 문제 역시 연방이나 연합 등 다양한 주권 개념을 놓고 중국과 대만 간 논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해법은 달성하기 쉽지 않지만 해결을 향한 노력 자체가 지정학적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AI와 생명공학 분야에 대해서는 핵산 합성 접근 통제, 과학자 활동에 대한 사회적 검증, AI를 활용한 불법 행위 탐지 등 새로운 통제 방식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핵무기 분야에서는 수량 제한 중심의 기존 군비 통제에서 벗어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접근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방어·공격 무기를 모두 군비 통제의 틀에 포함하고, 북한과 같은 신규 핵 보유국에 대한 상한 설정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후변화와 팬데믹 같은 초국가적 위협에 대해서는 더 많은 국제적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한 만큼 핵심 과제는 적절한 관리이며, 팬데믹 역시 피해 최소화를 목표로 조기 경보 체계 구축, 백신과 치료제의 공동 개발, 공중보건 역량 강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빈곤 감소와 복지 증진에 대해서는 도덕적 과제를 넘어 장기적 안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소득 국가일수록 분쟁과 폭력에 더 취약하다는 점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 향상이 국제 안보 안정에 기여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개발 원조가 비효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건, 교육, 농업, 직접 현금 지원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으며 이는 빈곤 퇴치와 인간 존엄성 증진에 기여했다고 부연했다.
오핸런 연구원은 "우리의 목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위험을 식별하고 관리하며 완화하는 데 있다"며 "개별 분야에서의 작은 진전들이 축적될 때 보다 안전한 세계를 향한 공동의 대의도 진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성근 전문위원 김상희 기자 ksh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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