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계급투쟁 그 두 번째 ‘흑백요리사 2’, 1라운드 흑수저 누벨바그

이 겨울, 뜨거운 맛의 열기가 오르고 있다. 지난 12월 16일 오후 5시,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는 공개와 동시에 다시 한번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공개 직후 국내 TOP 10 시리즈 부문 1위로 바로 직진 후, 온통 SNS 세계를 뒤덮고 있다.

'흑백요리사 2'는 시즌 1과 다른 감동 서사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 코리아.

시즌 1이 쏘아 올린 미식 예능의 새로운 서사가 냉혹하고 치열했다면, 시즌 2는 마음을 울리는 참가자들의 감동 서사가 더해진 듯 하다. 1라운드부터 흑수저 생존자들의 간절함과 눈물이 시청자들을 함께 눈물 짓게 했다. SNS 세계에서 먼저 화제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흑수저 생존자 5인을 만나본다.

아기 맹수, 김시현

소셜 미디어의 타임라인을 가장 먼저 점령한 주인공은 ‘아기 맹수’ 김시현이다. 양손을 들어 올리며 “크아앙~” 하고 포효하는 포즈를 취한 순간, 닉네임과 완벽하게 매치되는 사랑스러운 비주얼로 보는 이들을 단숨에 무장해제 시켰다. 그러나 그 해맑은 미소 뒤에는 ‘반전의 미학’이 숨어 있다. 가장 소박해 보이지만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나물’을 주제로 차려낸 ‘박주산채(薄酒山菜)’ 주안상은, 앳된 얼굴과는 대조적인 노련한 손끝에서 탄생한 밀도 높은 요리 한상이었다.

‘박주산채(薄酒山菜)’ 주안상으로 생존한 ‘아기 맹수’, 김시현. 넷플릭스 코리아.

김시현은 미슐랭 3스타 한식당 ‘가온’과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거쳐, 현재 논현동 한식 파인다이닝 ‘솔밤’에서 근무 중이다. 기성 요리계가 정해놓은 술안주 레시피를 보란 듯이 파괴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재료로 정면 승부를 거는 젊은 셰프의 대담함, 젊은 열정에 해맑고 귀여운 외모까지, 새로운 세대의 스타 셰프 캐릭터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아기 맹수’, 김시현. 미슐랭 3스타 한식당 ‘가온’과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거쳐, 논현동 한식 파인다이닝 ‘솔밤’에서 근무 중이다. @_hyeonsi

무쇠팔, 박주성

‘무쇠팔’ 박주성, 이 강인한 닉네임 뒤에는 드라마틱한 아이러니가 숨겨져 있다. 한쪽 팔의 근육이 서서히 위축되는 희귀 난치병을 극복하고, 가장 많은 근력과 집요한 반복을 요하는 ‘자가제면 소바’를 요리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진단병명을 밝히기도 했다. 박주성이 앓고 있는 난치병은 양성 국소성 근위축중 또는 히라야마병. 발병 원인도 모르고, 얼마나 진행이 될지도 모르고, 치료법이 없는 질병으로, 오른 팔과 오른 속에 근육이 빠져 있으며, 고대안암병원에서 진단 받았다. 그에게 신체는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벽이자 도구였기에, 박주성의 제면 방식이 더 감동적이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 대신 어깨의 회전을 이용해 칼질을 이어가는 모습은, 요리가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정신의 영역임을 증명하는 퍼포먼스와도 같았다.

‘메밀면과 닭육수로 우려낸 쯔유’로 안성재 심사위원에게 극찬 받은 ‘무쇠팔’, 박주성. 넷플릭스 코리아.

그러나 냉철한 심사위원 안성재는 동정심 보다는 접시 위의 결과물로 평가했다. 일정하게 썰린 면의 두께, 삶아낸 후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감, 그리고 텍스처까지, 뛰어난 기술로 완성된 소바라고 평가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며 붉어진 그의 눈시울이 그간의 모든 고난의 시간을 대변해준다. 그는 마포에서 소바 전문점 ‘소바쥬(SOBAZU)’를 운영하며, 일식, 한식, 양식이라는 카테고리에 갇히지 않은, 자신만의 메밀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무쇠팔’, 박주성. 마포의 소바 전문점 ‘소바쥬(SOBAZU)’의 오너 셰프다. @sobajuu

프렌치 파파, 이동준

‘프렌치 파파’, 이동준은 요리 시작 전부터 백수저 셰프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아 호기심을 일으켰다. 그는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비스트로 드 욘트빌’의 오너 셰프로, 국내 프렌치 클래식계의 유명한 셰프다. 그가 선보인 프랑스식 해물 스튜 ‘부야메스 메종’은 뭉근하게 끓여낸 위로이자 그가 삶을 대하는 온기 어린 철학이었다.

‘프렌치 파파’, 이동준. 프랑스식 해물 스튜 ‘부야메스 메종’으로 생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넷플릭스 코리아.

그의 요리가 유독 애틋하게 다가온 건, 커리어의 정점에서 돌연 자취를 감췄던 미스터리한 공백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흑백요리사 2’를 통해 그의 잠적의 이유가 밝혀졌다. 발달장애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 정점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낯선 타국으로 떠나 오직 아들에게 헌신하는 시간을 보냈다. 백종원 심사위원으로부터 ‘생존’을 받은 후, ‘12살인데 아직 말을 못하는 아들이 요리를 좋아하고, 아빠가 TV에 나오면 많이 좋아할 거 같다’며 인터뷰 하는 내내 그는 조용하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깊이 그를 응원하게 된다.

청담동에서 프렌치 클래식 ‘비스트로 드 욘트빌’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다. @yountvillebistro

술 빚는 윤주모, 윤나라

‘술 빚는 윤주모’는 이번 시즌 흑수저 최초 안성재 심사위원으로부터 ‘생존’으로 선정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짧은 시간에 소줏고리로 직접 소주를 증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술의 향이 먼저 미감을 깨우고, 그 뒤를 안주가 받치며, 다시 술의 여운으로 마무리되는 유려한 시퀀스로, 안성재 심사위원의 입에서 “너무 맛있었습니다”란 찬사를 이끌어냈다.

이번 시즌 1라운드 최초의 흑수저 생존자, ‘술 빚는 윤주모’, 윤나라. 넷플릭스 코리아.

해방촌에서 ‘윤주당’을 이끄는 윤나라는 셰프이자 양조가로서, 술과 음식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녀에게 술은 요리의 배경음악이 아니라, 맛의 구조를 완성하는 메인 멜로디다. “‘K-주모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당차게 말했지만, 무대 위에서 손을 심하게 떨며 긴장을 감추지 못하던 순간과 생존이 확정되자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끼던 장면은 간절함을 생생하게 전했다. 담담한 각오와 대비되는 그 진심 어린 순간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조용히 울렸다.

‘술 빚는 윤주모’, 윤나라. 해방촌에서 ‘윤주당’을 운영하고 있다. @yunjudang

4평 외톨이, 김상훈

‘평범한 음식을 하고 있어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된다’ 고 말한 ‘4평 외톨이’, 김상훈. 그러나 그가 차려낸 ‘한국의 현대 주안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곱게 다진 한우 암소에 숯불의 열기와 사과나무의 우아한 훈연 향을 입힌 떡갈비, 그리고 담백하고 고소한 고등어 비빔밥의 조화는 백종원 심사위원으로부터 ‘생존’을 받아냈다. ‘생존’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그것은 4평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홀로 견뎌온 고독한 시간들이 한번에 스쳐 지나간 듯 보였다. 수많은 시청자를 그의 편으로 만든 결정적 ‘생존’ 모멘트이기도 했다.

‘한국의 현대 주안상’으로 생존한 ‘4평 외톨이’ 김상훈. 넷플릭스 코리아.

김상훈의 세계는 작지만 깊다. 서촌의 ‘독도 16도’는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한국의 술과 공예, 그리고 엄선된 식재료를 큐레이션 하는 미식 아틀리에와 같다. 4평 남짓한 가게에서 1인 업장으로 시작한 ‘독도 16도’는 누하동으로 내려왔고, ‘독도 16도’가 시작한 청운동의 공간에 토종쌀을 주제로 한 ‘독립식당’을 하나 더 운영 중이다. 두 식당 모두 3개의 테이블로 이뤄진 작은 식당이다.

누하동의 ‘독도 16도’과 함께, ‘독도 16도’가 시작한 청운동의 공간에 토종쌀을 주제로 한 ‘독립식당’을 하나 더 운영 중이다. 두 식당 모두 3개의 테이블로 이뤄진 작은 식당이다. @dokdo.16.celsius

[김의향 THE BOUTIQUE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