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사교육비 1% 오르면 아이 수 0.26% 줄어든다…숫자가 증명하는 비극 [Book]

매일경제 정유정 기자(utoori@mk.co.kr)
원문보기

사교육비 1% 오르면 아이 수 0.26% 줄어든다…숫자가 증명하는 비극 [Book]

서울흐림 / 7.0 °
인구에서 인간으로, 이철희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16년간 사교육비 35% 오르자
합계출산율은 9% 줄어들어

현금지원 휴직만으론 역부족
과도한 경쟁 불평등 완화해

“중환자에 진통제만 투여”
저출산대책이 실패한 이유


[연합뉴스]

[연합뉴스]


사교육비와 주거비 상승은 출산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교육비가 1% 증가할 때 출산율이 최대 0.26% 감소하고, 집값 상승은 무주택자의 출산 결정을 직접적으로 위축시킨다고 분석한다. 저출산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이 교수의 신간 ‘인구에서 인간으로’는 한국의 저출산을 둘러싼 오래된 통념을 데이터로 다시 점검한다. 출생아 수 감소는 이미 익숙한 현상이지만 왜 아이가 줄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설명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저자는 30년 넘게 인구경제학을 연구해 온 학자로 지난 16년간 한국의 결혼과 출산 변화를 추적하며 독자적인 데이터를 구축해왔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 정책과 담론은 결혼한 이들의 출산율 하락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저자가 새로 구축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는 결혼의 감소가 장기적으로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비율이 급격히 늘며 출산율 하락이 더욱 가속화됐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일자리 질 저하로 인한 경쟁 과열, 여성에게 집중되는 육아 부담이 서로 맞물리며 저출산으로 이어졌다. 소득 수준에 따른 출산율 격차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0년간 소득 중상위(4분위)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소득 최하위(1분위)의 두 배 수준을 유지했다. 결혼과 출산이 더 이상 보편적 선택이 아니라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사람들의 선택이 된 셈이다.

사교육비와 주거비의 영향은 더욱 직접적이다.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실질 사교육비는 약 35% 증가했는데, 이로 인해 합계출산율이 최대 9% 가까이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값과 전세가가 오를수록 무주택자의 출산율이 뚜렷하게 낮아지는 흐름도 확인된다.

저자는 지난 20년간의 저출산 정책이 중증질환 환자에게 진통제만 처방한 것이라고 비유한다. 현금 지원과 육아휴직·보육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필요했지만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 출산 이후 여성에게 가해지는 노동시장 불이익 등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저출생이 만들어내는 악순환 구조도 짚는다. 영유아 수가 줄면서 보육시설이 빠르게 감소하고, 그 결과 자녀 등원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과 자녀 돌봄 사이의 균형 맞추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고소득층 부모를 겨냥해 해외 명품 브랜드가 아동복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한 반면 중저가 아동 브랜드는 빠르게 위축되며 저소득층 아동과 부모는 소비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저자는 아이들이 사라지는 사회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과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를 인구를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는 사회로 전환할 때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법도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