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40년이 지난 '시녀 이야기'는 여전히 금서 논쟁의 중심에 선 책이다. 전쟁과 내전, 출산율 저하로 미국이 혼란에 빠지자 정·재계의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미국을 '접수'한다. 헌법은 폐기되고 신정일치 국가가 출범한다. 내연녀, 동거녀, 재혼녀는 모두 '시녀'로 신분이 하락하고, 가임기 여성은 사령관을 비롯한 지배자와 '월 1회' 성관계를 맺고 아이를 임신해야 한다. 거친 비유가 되겠지만 미국 사회가 탈레반화된 것. 미국이 당면한 우울한 현실과 신체 폭력, 성의 지배·피지배 문제를 성경 요소를 섞어 패러디한 이 디스토피아 소설은 애트우드에게 명성을 허락했다. 애트우드는 이후 부커상만 2회 수상했으며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하여'는 한국엔 2021년 출간된 애트우드의 강의록으로 그의 사상이 집약돼 있다.
1939년생 애트우드는 7세에 희곡을 썼고, 26세에 시집을 출간했다. 토론토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그는 자신이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어떤 집념이나 뚜렷한 목표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음을 밝힌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축구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다가 머릿속으로 시를 썼고 종이에 옮겨 적었다. 영화관도 없고 라디오도 잘 들리지 않는 북부에 살며 오직 '책'과 '고독'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애트우드는 작가가 됐다. 유년의 결핍이 대작가의 자양분이 됨을 그는 잊지 않는다.
"하나는 일상을 살고 또 하나는 글을 쓰는데, 우울하게 보면 둘은 서로에게 기생한다. 그런데 어느 쪽이 진짜일까?"
애트우드는 또 "인쇄된 책은 악보와 같다"는 통찰도 건넨다. 책은 한 시대에 태어나지만 독자의 읽는 방식에 따라 변한다.
악보가 그 자체로 음악이 아니듯, 텍스트가 그 자체로 문학은 아니다. 각 세대의 독자들이 동일한 텍스트에서 무엇을 읽어내느냐에 따라 책은 변한다. 애트우드는 그런 점에서 쓴다. "인쇄된 책은 악보와 같다. 그 자체가 음악은 아니지만 음악가가 연주할 때, 즉 '해석'할 때 음악이 되는 악보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듣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독자는 고유한 통역가가 된다."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