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는 요즘 생존의 문제... 건보 적용 검토하라”
수천억 예산 드는 사안인데, 생방송 중 즉흥 지시
수천억 예산 드는 사안인데, 생방송 중 즉흥 지시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탈모는 요즘 생존의 문제”라며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질병보다는 미용 목적으로 여겨졌던 탈모, 비만 등 비급여 항목에 대한 건보 적용을 확대하라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 보고에서 “탈모도 병의 일부 아니냐. 젊은 사람들이 (탈모약을) 많이 쓴다던데 검토한 적 있나”라고 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이 “의학적 이유로 생기는 ‘원형 탈모’ 등은 치료를 지원하지만, 유전적 요인으로 생기는 탈모는 의학적 치료와 연관성이 떨어져 건보 급여 적용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속된 말로 ‘대머리’니까 안 해준다는 원리”라며 “이걸 병이라고 할 것이냐, 아니냐는 논리적 문제가 아니라 개념 정리의 문제”라고 했다. 또 “(탈모약이) 상당히 대중화된 모양인데 의료보험을 지정하면 약값이 내려가지 않느냐”고도 했다. 정 장관이 “미용적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도 건보 급여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탈모가) 옛날에는 미용 문제라고 봤는데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무한대로 해주는 게 너무 재정적 부담이 크다면 횟수나 총액 제한을 하는 등 검토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탈모에 대한 건보 적용이 확대되면, 건보 재정 고갈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4월 급여비 증가 등에 따라 건보 재정이 2026년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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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정은경 장관에게 “비만도 마찬가지”라며 “요새 약물 치료도 많이 하는데, 검토를 하고 있느냐”고 했다. 현재 고도 비만의 경우 위 절제술 같은 수술적 치료는 건강보험이 일부 적용되지만, 약물 치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탈모, 비만 치료제의 건보 지원 검토를 언급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보험료만 내고 혜택을 못 받아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며 “청년들의 소외감이 너무 커져서 하는 이야기다. 세대 간 보험료 혜택 (차이는) 고민은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때 탈모 치료약의 건보 적용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2030 사이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의료계에선 “국내 탈모 인구가 1000만명인데 건보 적용 확대로 탈모 약 먹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재정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통령도 당시 “탈모약 지원에는 연간 1000억원 정도 추가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건보 재정을 파탄 내는 모(毛)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이번 대선 공약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대통령 지시로 복지부는 지원 여부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은 난임 치료에 대해서 “(시험관 시술 외에) 다른 방법도 지원하고 있느냐”며 “개인적 선호가 있을 거 같은데, 한의학도 (난임 관련) 처방이 있는 것 같던데 보험 처리가 되나”라고 묻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대로 탈모, 비만, 한방 난임 치료 등에 대한 건보 적용이 확대되면, 건보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건보 재정은 2026년 적자로 돌아서고, 보험료 수입에서 지출을 빼고 남은 돈을 적립해 둔 누적 준비금도 2030년 소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날 업무 보고에서 건보 재정 건전성 방안과 관련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이 대통령은 “국민연금도 주가 상승의 혜택을 엄청 봤다”며 국민연금에 국내 주식 비중을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 최근 코스피 상승 여파로 국민연금 운용 수익이 늘어났으니, 추후 국내 주식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김성주 연금공단 이사장은 “내년에도 이렇게 국내 증시가 좋을지 어떨지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투자 지침 기준들을 변경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주에 이어 이날 업무 보고에서도 즉흥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업무 보고는 각 부처가 새해의 정책 방향과 주요 과제를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자리다. 대통령은 이를 듣고 정책의 우선순위와 실행 방안을 조율해 국정 운영 방향을 정한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가 국민에게 국정 운영을 소상히 알리겠다는 취지로 이를 생중계하면서, 일각에선 “대통령이 예산 고려 없이 즉흥 지시를 이어가면서 업무보고가 포퓰리즘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요즘처럼 대통령이 업무 보고 중 애드리브로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국가 시스템을 함부로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고 썼다.
특히 이 대통령의 탈모, 비만약 언급을 두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 지지 성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2030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이 대통령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선 젊은층이 많이 하는 게임사의 확률형 아이템 판매에 대한 제재를 당부했다. 그는 “현장에서 청년들이 게임하다 열 엄청 받는다고 하는데 뭐 하려고 화나게 합니까”라며 “과징금 등 세게 좀 제재하면 좋겠다”고 했다.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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