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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중 랜드마크 얼굴 된 ’23m 알루미늄 고목'

조선일보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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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중 랜드마크 얼굴 된 ’23m 알루미늄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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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 양혜규 설치 작품
13일 개관한 대만 타이중미술관에 전시된 ‘유동 봉헌–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Tree Shade Triad)’ 아래 작가 양혜규가 서 있다./국제갤러리

13일 개관한 대만 타이중미술관에 전시된 ‘유동 봉헌–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Tree Shade Triad)’ 아래 작가 양혜규가 서 있다./국제갤러리


일요일이었던 지난 14일 대만 타이중시(市)의 ‘허파’로 불리는 중앙공원이 인파로 활기가 넘쳤다. 광활한 자연 생태를 간직한 공원 내에 전날 문을 연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를 보려는 시민과 관광객이 잔뜩 몰려들었다.

그린 뮤지엄브러리는 미술관(타이중미술관)과 도서관(타이중공공도서관)이 결합된 지상 공간 2만8000㎡의 복합 문화 공간이다. 대만에서 타이페이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인구 280만의 도시 타이중의 신생 문화 랜드마크로 만들어졌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유명 건축 사무소 SANAA가 설계한 현대적이고 개방적인 형태의 백색 건물이 시선을 끌었다.

이곳의 중심에 한국 작가 양혜규(54)의 ‘나무’가 등장했다. 한국의 ‘당산나무’, 대만의 ‘다수공’ 등 동양 문화권의 고목(古木) 숭배 전통에서 영감받은 신작이 미술관 개관과 함께 공개된 것이다. 2년 동안 미술관 ‘얼굴’이 될 장소 맞춤(커미션) 작품이다. 대만 작가 마이클 린과 함께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양혜규가 타이중미술관 커미션 작업의 첫 주자가 됐다.

차가운 알루미늄은 공동체를 결집하는 다정한 나무로 변신했다. 작가의 대표적 소재인 ‘베네치안 블라인드’를 다양한 형태로 연결해 높이 23m, 무게 1.5t의 거대한 나무를 만들었다. 일상적 사물인 블라인드는 대규모 설치 조각으로 탈바꿈했다. 이름은 ‘유동 봉헌-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Tree Shade Triad)’. 짙은 녹색과 황갈색 블라인드 살이 가지와 잎이 됐고, LED 조명을 넣은 줄이 나무에 두르는 ‘금줄’처럼 걸렸다.

타이중미술관에 전시된 ‘유동 봉헌-삼합 나무 그늘'은 세 개의 조각이 한 작품을 이룬다. 양혜규 작가의 블라인드 소재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362×1086×1086㎝./국제갤러리

타이중미술관에 전시된 ‘유동 봉헌-삼합 나무 그늘'은 세 개의 조각이 한 작품을 이룬다. 양혜규 작가의 블라인드 소재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362×1086×1086㎝./국제갤러리


이 알루미늄 신목(神木)이 1층부터 5층 천장 높이(층고 27m)까지 뚫린 미술관 로비 중앙 공간을 채웠다. 개관일 현지 관람객들은 도란도란 모여 나무를 바라봤다. 주변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며 다양한 높이에서 작품을 감상했다. “공간의 하이라이트” “미술관과 조화가 정말 좋다” 같은 반응이 나오며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인근 주민 앤젤 리씨와 함께 온 딸 애나는 “연말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고도 했다.

12일 미술관에서 만난 양혜규 작가는 “큰 폭포수, 큰 바위, 큰 나무 이런 것들은 현대 문명이 주는 스펙터클(장관)과 달리 존경을 불러온다”며 “지역 생태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담길 바란 미술관의 방향성에 맞게 거대한 나무와도 같은 작품을 ‘식재’하게 됐다”고 했다. “이제 막 문을 연 이 공간에 뿌리내려 지역 공동체를 돌보는 존재가 된다면 좋겠어요.”


의도한 대로 밤이 되면서 양혜규의 나무는 미술관 너머 ‘마을의 나무’가 된다. 유리와 구멍 뚫린 메쉬 금속으로 만들어진 개방감 있는 미술관 외벽 덕이다.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밤 10시까지 빛나는 나무를 볼 수 있다. 반딧불이를 형상화한 초록 레이저 빛도 미술관 안팎을 떠다닌다. 이쉰 라이 타이중미술관 관장은 “양혜규는 예술 작품과 건축적 공간의 관계를 탁월하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작가”라고 했다.

‘유동 봉헌-삼합 나무 그늘'의 야간 설치 전경./국제갤러리

‘유동 봉헌-삼합 나무 그늘'의 야간 설치 전경./국제갤러리


서울에서 태어난 양혜규는 한국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모교인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대 슈테델슐레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 선정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25 파워 100)에서 올해 한국인 중 가장 높은 38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미술계에서 지금 가장 잘나가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양혜규는 “지금 시점에선 작품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시가 끝난 뒤 제 작품이 그 미술관 소장품이 될 때 진정으로 제가 그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느낌이에요. 남아서 끊임없이 꺼내서 보여지고, 연구도 되고, 시대적인 평가도 받고요. 그런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 같아요.”

그는 이번 작업에 대해 “신생 미술관에서 제가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작품이 전달했으면 하는 바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예술가는 그저 실천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무언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소통과 대화를 일으키려 하죠. 사회와 인류의 공작원(agent provocateur) 같기도 하네요.”


/타이중=김민정 기자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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