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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시시각각] 박진경 대령은 학살범인가

중앙일보 최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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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시시각각] 박진경 대령은 학살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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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정치외교국제 부국장

최민우 정치외교국제 부국장

제주 4·3 사건은 양면적이고 논쟁적 이슈다. 4·3 사건은 1948년 남한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려는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도당 총책 김달삼 주도로 발발한 무장봉기였지만,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이 대거 희생됐기 때문이다. 현재 확인된 민간인 희생자는 1만4000여 명으로 당시 제주 인구의 무려 10%나 됐다. 이처럼 4·3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압축하는 비극적 사건이었지만 과거 정부는 이를 사실상 외면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야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노 대통령은 4·3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했다. ‘4·3 진상조사 보고서’도 제작됐다.

북한 김달삼 애국열사릉 사진[중앙포토]

북한 김달삼 애국열사릉 사진[중앙포토]


다만 일각에선 “군사정부에선 4·3을 남로당 빨치산의 폭동으로만 간주하더니 최근엔 이승만 정부 군경토벌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만 몰아세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를 부각하는 과정에서 군경은 가해자로만 지목되고, 4·3을 촉발한 남로당의 살상(殺傷)은 상대적으로 간과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4·3 보고서’에 따르면 희생자 1만4000여 명 중 남로당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는 1764명(12.6%)으로 조사됐다. 특히 1948년 10월 여수 14연대 반란으로 군의 ‘초토화 작전’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는 남로당 폭력이 더 극심했다고 한다.



4·3 사건 진압에 앞장선 박진경

유공자 지정 보수·진보 대결 양상

진영 논리로 역사 재단해선 안 돼


이 지점에 박진경 대령 논란이 자리해 있다. 박 대령은 4·3 사건이 발발하고 한 달 뒤인 1948년 5월 제주에 주둔하고 있던 9연대 연대장으로 부임해 진압 작전을 일선에서 지휘한 인물이다. 부임 한 달여 만인 같은 해 6월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자던 중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다. 4·3 단체와 진보 진영은 박 대령이 강경 진압을 통해 양민 학살의 주범이라는 입장이지만, 보수 진영에선 박 대령을 암살한 부하들이 남로당 세포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박 대령 논쟁이 치열한 건 4·3의 성격과 책임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1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와 제주4.3 범국민위원회 회원들이 제주 4.3사건 당시 진압을 주도한 고(故) 박진경 대령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것을 규탄하며 등록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와 제주4.3 범국민위원회 회원들이 제주 4.3사건 당시 진압을 주도한 고(故) 박진경 대령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것을 규탄하며 등록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4·3 보고서’엔 박 대령 암살과 관련한 재판 내용도 수록돼 있다. 암살범 중 한 명인 손선호 하사는 “박 대령의 30만 도민에 대한 무자비한 작전 공격에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증언한다. 반면에 당시 소대장이던 채명신(전 주베트남 한국군사령관)은 “4·3 초기 경찰이 처리를 잘못해 많은 주민이 입산했다. 박 대령은 폭도들의 토벌보다는 입산한 주민들의 하산에 작전의 중심을 두었다”고 말한다. 주민을 남로당 세력과 떼어놓는 선무공작(宣撫工作)에 주력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양민 대량 학살은 4·3 사건 초반기가 아닌, 이승만 정부가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1948년 11월)하고 대규모 소탕 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게 정설이다.

앞서 지난 10월 국가보훈부는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1950년 추서된 을지무공훈장을 근거로 유족이 낸 유공자 신청을 승인한 것이다. 비겁한 보수 정부도 회피하던 박 대령에 대한 유공자 지정을 진보 정부가 과감히 수용했기에 “국민 통합을 위한 전향적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4·3 단체의 반발이 커지자 국가보훈부 장관은 공식 사과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유공자 지정 취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국방부는 박 대령에게 75년 전 추서됐던 무공훈장을 취소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에서 박 대령 스토리가 소개돼 현 정부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박 대령 논란을 잠재우려다 “이재명 정부가 남로당만 편든다”는 반발이 나오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사료가 아닌 진영 논리로 접근하면 역사는 오염되기 쉽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1월 미국 CNN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 핵의혹과 대북정책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중앙포토]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1월 미국 CNN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 핵의혹과 대북정책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중앙포토]


1998년 1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 폭동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억울한 죽음에는 군인도 예외가 아니다.

최민우 정치외교국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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