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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 후보께

조선일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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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 후보께

서울흐림 / 4.5 °
내일 청문회 시작되면
방통위 때처럼 또 싸울 것
시대착오적 파행 끝내자

경청하고 소통하라
권력의 ‘충견’이 아니라
사회에 헌신할 ‘지성’으로
김종철 초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4일 과천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에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철 초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4일 과천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에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철 교수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위원장 후보로 추천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웠습니다. 사회적 소통 규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소탈한 성품을 겸비한 교수님이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험한 자리가 사람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오랫동안 지켜본 터라 걱정도 들었습니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을 내치고자 전광석화처럼 방통위를 없애고 방미통위를 세운 지 두 달여가 흘렀습니다. 갈등이 잠시 숨을 고르는 기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폭풍 전의 고요라고 할까요. 내일 청문회를 시작으로 싸움은 재개될 것입니다.

이 갈등의 뿌리는 “사회적 소통과 여론 형성의 중심인 공영방송을 자신들의 후견의 덫에 가두려는 정권의 일탈”(최훈, 2025)입니다. 이 난제를 해결하려고 만든 게 위원회 형식의 합의제 기구입니다. 상호 설득과 이견 조정을 통한 숙의적 의사결정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종래 방통위의 5위원 체제를 방미통위에서 7위원 체제로 개편한 것 또한 이를 보완하려는 취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상적 제도는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위원회의 인적 구성에서 집권당에 유리한 수적 우위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이에 야당은 충성심과 전투력이 검증된 강성 인사를 위원으로 추천해 극한의 대립 구도를 형성한 것이 종래 방통위의 실상이었습니다. 공영방송 사장에 자기편 인사를 앉히려는 권력과 이에 맞선 세력의 대리자들이 혈투를 벌이는 ‘투견장’이었다고 할까요. 이는 출범부터 폐지 순간까지 동기구의 파행, 심지어 작동 불능 상태를 초래했습니다.

새로 출범한 방미통위에 대해서도 비관적 전망이 우세합니다. 이름 말고는 종래의 방통위와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번에 방미통위 위원으로 추천되는 인사들 역시 진영의 이익에 충실한 ‘투사’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합의제 기구 무용론이 제기됩니다.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해결책이 없다고 주장되기도 합니다. 후견주의를 막아낼 최후의 방패인 합의제마저 실제 운영해 보니 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게 과연 제도 탓인지. 합의제 기구를 이끌어 온 주체들에겐 정녕 어떤 여지도 없었는지.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간청합니다. 이 시대착오적 파행을 끝내주시기 바랍니다. 그 첫걸음은 교수님을 추천한 진영과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후견 세력의 아바타가 되는 건 뜻을 품고 출사한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대신 내부의 위원들, 특히 타 진영의 위원에게 다가가 진심을 다해 소통하시기 바랍니다. 매번 원점으로 돌아오는 ‘시시포스의 고행’처럼 하루하루 성과 없이 갈릴지언정 인내하며 소통하시기 바랍니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 교수님의 진정성에 위원들의 닫혔던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위원 간에 신뢰와 존중이 싹트며, 의견의 차이가 설득과 조정을 통해 집단지성으로 승화되는 합의제 본연의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최종 결정이 무엇이든, 합의에 이른 과정은 권위를 인정받고, 그 권위가 다시 외압으로부터 과정을 지켜낼 것입니다. 이 작지만 의미심장한 변화가 공영방송을 바로 세우고 더 나아가 정치를 바꿀 것입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가지 못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게 옳은 길입니다. 이제 진영의 거친 입들은 교수님을 물어뜯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심판자인 국민이 모든 것을 지켜볼 것입니다.

두 가지만 첨언하고 마치겠습니다. 첫째, 방미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역할 차원에서 규제·진흥의 분리, 영역 차원에서 방송·통신의 분리는 양 기구의 갈등과 이중 규제 같은 혼선으로 이어졌습니다. 미디어 정책에서 합의제 기구와 독임제 기구를 구분한 이유는 정치적 사무와 정책적 사무의 분리에 있습니다. 방미통위의 소관이 전자임을 명확히 할 때 양 기구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정책이 정치에 볼모 잡히는 사태도 최소화될 것입니다.


둘째, 기구 이름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라는 이름은 어법에 맞지 않습니다. 방송도 통신도 미디어입니다. 대안이 마땅치 않다면,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원명으로 돌아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청문회 준비 기간이 세세한 미디어 행정 사무에 대한 학습을 넘어, 합의제 미디어 정책 기구를 이끄는 수장의 소명을 되새기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권력의 충견이 될 것인가, 헌신적 지성이 될 것인가. 교수님이 바른 선택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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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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