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매각 넘어 경영권 확보 후 M&A…돈 되는 곳 어디든 투자"
안정성 위주 KIC와 차별화…내년 상반기 설립 목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2025.12.11/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정부가 내년 상반기 설립을 목표로 추진 중인 '한국형 국부펀드'의 밑그림이 공개됐다.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을 벤치마킹해, 상속세 등으로 정부가 물납 받은 주식을 종잣돈 삼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단순히 외환보유액을 안정적으로 굴리는 데 그쳤던 기존 한국투자공사(KIC)와 달리, 기업 인수합병(M&A) 등 고수익을 노리는 '적극적 투자'로 국부 창출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계획이다.
1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한 '2026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적극적 국부 창출' 방안을 발표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업무보고 이후 브리핑에서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해 국부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증식해 미래 세대로 이전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세금으로 받은 주식, 헐값 매각 대신 키워서 판다"
정부는 펀드의 재원 마련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중 핵심은 물납 주식이 될 전망이다. 구 부총리는 "물납 받은 주식도 펀드의 재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정부는 상속세 등을 현금 대신 주식으로 납부(물납)받으면, 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을 통해 이를 단순히 매각해 현금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찰이 반복되며 가치가 하락하거나,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 부총리는 "지금 물납 받은 주식은 단순하게 매각하는 데 중점을 두는데, 이게 국부펀드 재원으로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단순 매각이 아니라, 필요하면 지분을 더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한 뒤 매각(M&A)하는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수동적인 '관리'에서 능동적인 '가치 제고(Value-up)'로 자산 운용의 틀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의 지난해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22년까지 17년간 거둔 연평균 물납액은 약 2270억 원 수준이다. 다만 해마다 차이가 큰데, 2023년의 경우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 사망에 따른 상속세로 지주사(NXC) 지분 등 총 4조 9976억 원이 국세로 물납 된 바 있다.
강기룡 기재부 차관보는 "재원의 안정적 조달 여부와 재정 영향 등 여러 고민이 있어 광범위하게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종가와 원달러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2025.12.12/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
"2억불로 시작해 3000억불 된 테마섹처럼"…공격적 투자 예고
국부펀드의 투자 방식과 운용 철학은 철저히 '수익성'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모델이 된 싱가포르 테마섹은 1974년 설립 당시 3억 5000만 싱가포르달러(미화 약 2억 7000만 달러)로 시작했으나, 적극적인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M&A)으로 현재 3000억 달러가 넘는 거대 펀드로 성장했다.
정부가 모델로 삼은 테마섹은 1974년 싱가포르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싱가포르항공, 싱가포르텔레콤 등 국영기업 주식(약 3억 5000만 싱가포르달러)을 현물 출자받아 출범했다.
테마섹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 철저한 상업적 운영이다. 테마섹은 넘겨받은 국영기업을 단순히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M&A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였다.
투자 방식도 공격적이다. 초기에는 자국 국영기업 관리에 집중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아시아와 서구권의 금융, 통신, 미디어, 기술(TMT), 생명과학 등 유망 분야에 전방위적인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성장 단계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구 부총리는 "테마섹도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며 "우리도 초기에는 작은 자금으로 시작하되, 민간 전문가에게 의사결정을 맡겨 상업적 베이스로 운영하며 수익률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대상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구 부총리는 "부동산이든 산업이든 바이오든 가리지 않고, 투자를 했을 때 수익률이 10~20%로 높을 수 있다면 과감하게 투자할 것"이라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확장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KIC와는 다르다"…국내 벤처 키워 국부 증식 '선순환'
기존 국부펀드인 KIC와의 차별점도 명확히 했다. KIC는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을 위탁받아 운용하기 때문에 안정성과 유동성이 최우선이며, 원칙적으로 국내 투자가 제한된다.
반면 한국형 국부펀드는 국내 유망 벤처기업 투자부터 해외 기업 M&A까지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 부총리는 "KIC는 외환보유액을 운용해야 하니 적극적인 투자가 어렵지만, 새 펀드는 국내 벤처에 투자해 상장(IPO)시키고 그 수익으로 다시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나중에는 규모가 커지면 글로벌 시장의 '키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초 구체적인 설립 방안을 담은 법안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다만 물납 주식의 가치 평가 문제나 정부가 민간 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는 '관치' 우려 등을 해소하는 것이 과제가 될 전망이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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