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나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치킨 필렛(순살 닭고기) 두 개 사이에 햄버거 번(빵)이 낀 모습.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지난 2일 출시된 KFC ‘업사이드다운징거버거’의 실제 구조입니다. 간판 메뉴 ‘징거버거’의 위아래를 뒤집은 이 이색적인 조합은 공개 직후 소셜미디어(SNS)에서 인증 사진과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트) 형태의 2차 콘텐트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넷플릭스 인기작 ‘기묘한 이야기’ 속 ‘뒤집힌 세계(Upside Down)’를 구현한다는 취지로 선보인 한정 메뉴였죠.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나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KFC가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드라마 세계관을 반영해 선보인 이색 신메뉴. 김세린 기자 |
치킨 필렛(순살 닭고기) 두 개 사이에 햄버거 번(빵)이 낀 모습.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지난 2일 출시된 KFC ‘업사이드다운징거버거’의 실제 구조입니다. 간판 메뉴 ‘징거버거’의 위아래를 뒤집은 이 이색적인 조합은 공개 직후 소셜미디어(SNS)에서 인증 사진과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트) 형태의 2차 콘텐트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넷플릭스 인기작 ‘기묘한 이야기’ 속 ‘뒤집힌 세계(Upside Down)’를 구현한다는 취지로 선보인 한정 메뉴였죠.
이번 글로벌 캠페인은 한국에서 특히 반응이 강했습니다. ‘국내 1세대 치킨 프랜차이즈’ 혹은 ‘흰 수염의 할아버지 마스코트’로 기억되던 KFC가, 요즘 MZ세대에게는 오히려 ‘어쩐지 힙한 브랜드’로 다시 읽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포화한 치킨·버거 시장에서 40년 된 브랜드가 메뉴 하나로 화제의 중심에 선 것도 인상적입니다. 비크닉은 KFC가 레드오션 속에서 어떻게 ‘올드 브랜드’의 이미지를 뒤집고 MZ세대의 관심을 다시 끌어냈는지, 그 변화를 만든 포인트를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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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기 딛고 브랜드 재정의…‘조합 파괴’ 메뉴의 힘
KFC 국내 1호점인 종로점이 38년 만에 영업을 종료해 간판을 뗀 모습. 사진 뉴시스 |
미국에서 시작된 KFC는 1984년 한국에 진출해 ‘버킷 치킨’을 앞세워 한 시대의 외식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수제버거가 낯설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시장 구도가 바뀌면서 KFC는 글로벌 버거 체인, 토종 패스트푸드, 배달 중심 치킨 브랜드 사이에서 뚜렷한 포지션을 잃었습니다. 직영 중심 모델 역시 확장에 한계가 있었고, 결국 2022년에는 상징적 매장인 종로 1호점이 38년 만에 문을 닫았죠.
변화는 2023년 PEF 인수 이후 본격화됐습니다. 40년 가까이 유지해온 직영 체제를 가맹 확장 구조로 바꾸고, 노후 매장을 리뉴얼하며 운영 효율화를 추진했습니다. 기반 정비 후 KFC는 스스로를 ‘치킨버거 브랜드’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특히 그해 버거킹에서 ‘사딸라’, ‘킹오더’ 등 이슈성 마케팅을 주도했던 신호상 대표가 취임하며, 치킨이라는 핵심 자산을 적극적으로 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켄터키치킨과 피자를 조합해 이색 메뉴로 호평을 얻은 '켄치짜'. 최현석 셰프가 함께했다. 사진 KFC |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기존 식사 문법을 비트는 ‘조합 파괴형’ 메뉴입니다. ‘켄치밥’(치킨+밥), ‘켄치짜’(치킨+피자)처럼 재료는 익숙하지만 구조는 낯선 조합이죠. 한 입의 맛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입니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경험 확장’을 목표로 설계됐고, 유명 셰프 최현석과의 협업으로 완성도를 확보했습니다. 시각적으로도 ‘찍고 싶은 메뉴’를 지향했다고 해요. ‘켄치밥’은 출시 5개월 만에 100만 개 누적 판매를 기록하며 대만과 몽골 등 해외 역수출로 이어졌습니다. 메뉴 구조 재정립과 브랜드 아이덴티티 강화가 속도를 내면서, 2025년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19.2% 증가한 1678억 원, 영업이익은 39.7% 늘어난 93억 원을 기록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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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마케팅: 세계관을 현실 경험으로 비틀다
KFC와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협업 매장 전경. 사진 KFC |
앞서 ‘기묘한 이야기’ 협업은 KFC가 IP(지식재산)를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장치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내부에서는 “KFC다운 방식으로 MZ세대가 열광하는 세계관을 현실로 연결하자”는 목표에서 출발했다고 해요. 강한 팬덤을 가진 IP가 KFC의 시그니처 메뉴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죠. 팝업이 열린 신촌점 외관을 기울어진 간판과 붉은 조명으로 꾸며 매장 자체를 ‘세계관화’한 것도 같은 배경입니다.
업사이드다운징거버거 역시 이름만 얹은 협업이 아니라, 세계관을 메뉴 구조에 직접 반영한 사례입니다. 백민정 KFC코리아 마케팅총괄(CMO)은 “기존 징거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균형감을 만들기 위해 구조를 조율했고, 매장에서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되는 비주얼을 의도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메뉴 실험은 SNS에서 체험 콘텐트 형태로 빠르게 퍼지며, 브랜드 이미지를 새로 쓰는 역할을 하니까요. 한정 메뉴와 팝업은 대규모 투자 없이도 소비자 반응을 즉시 확인할 수 있고요. 실제로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무형 콘텐트가 음식이나 공간처럼 유형 매체로 구현될 때 젊은 세대의 경험 욕구가 크게 충족된다”고 분석합니다.
SNS 참여형 이벤트를 유도한 기묘한 이야기 팝업. 김세린 기자 |
또 백 총괄은 “메뉴·마케팅·운영·고객 경험이 한 방향으로 정렬될 때 브랜드 경쟁력이 생긴다”도 했습니다. KFC는 이러한 전략을 통해 온·오프라인 경험의 연결성을 강화해 왔고, 지난 6월 기준 신규 앱 가입자 43만6000명, 재구매율 56.4%를 기록했습니다. 단발성 화제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 축적과 재방문 구조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그는 “한국은 트렌드 확산 속도가 빨라 실험의 확장성이 크다”며 “글로벌 브랜드의 본질은 유지하되 한국 시장만의 속도감과 참여형 경험을 더해 차별화를 만들고 있다”는 설명도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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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콘셉트: 올드함을 활용해 개성을 만들다
글로벌 KFC가 전개한 만우절 기념 '프라이드 치킨맛 치약' 판매 이벤트. 사진 KFC |
KFC 리브랜딩의 핵심은 ‘오래된 이미지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브랜드의 개성으로 바꾸느냐였습니다. 창립자이자 아이콘인 커넬 샌더스의 헤리티지를 전면에 두고 B급 유머와 셀프 패러디를 결합해 브랜드 톤을 ‘Weird(괴짜)’로 재정의한 것이죠. 글로벌 정체성 ‘Finger Lickin’ Good(손가락까지 핥을 정도로 맛있는 맛)’을 위트 있는 방식으로 확장한 셈입니다.
이 전략은 해외에서도 일관됩니다. 영국과 일본 KFC가 치킨 레시피 향수와 입욕제를 내고, 호주가 만우절에 ‘치킨 맛 치약’을 실제 판매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야구 중계 화면에 샌더스 대령 분장을 한 스턴트맨이 ‘우연히’ 잡히도록 연출해 영상이 100만회 이상 퍼지기도 했죠. 과거 ‘구식’으로 보였던 요소들이 오늘날에는 오히려 친숙함·유머·참여 욕구를 자극하는 자산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흐름입니다.
KFC캐나다에서 진행한 스턴트맨 마케팅. "AI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이끌며 화제를 모았다. 사진 X 캡처 |
물론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치킨값 상승으로 인한 가격 피로감, 경쟁 브랜드의 신제품 공세, 협업 마케팅의 과포화 등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기본기는 맛”이라며 “한국인의 입맛을 반영한 메뉴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고,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 역시 “장기적 지속 가능성의 핵심은 비용 절감이 아니라 고객”이라고 말했어요.
KFC 내부에서도 “KFC만의 맛과 경험을 더 분명하게 시장에 각인시키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습니다. 단기적인 가격·프로모션 경쟁에 치우칠 경우 브랜드 고유의 강점이 희석될 수 있어서입니다. 브랜드의 실험이 제2의 반등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지만, 이 변화를 소비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향후 흐름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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