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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 권도형, 檢 12년 구형했는데 판사가 15년 때렸다…한국이라면?

헤럴드경제 문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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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 권도형, 檢 12년 구형했는데 판사가 15년 때렸다…한국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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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경법 위반, 이론상 ‘최대형량’ 징역 50년·무기징역 가능
‘징역 40년’ 판례도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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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권도형(34) 테라폼랩스 설립자가 스테이블코인 ‘테라USD’(이하 테라) 발행과 관련한 사기 등 혐의로 미국 법원으로부터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구형한 12년보다 형량이 늘었다.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폴 엥겔마이어 판사는 11일(현지시간) 열린 선고 공판에서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권씨에게 “희대의 사기 사건”이라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미 검찰은 ‘플리 바겐’(유죄인정 조건의 형량 경감 또는 조정) 합의에 따라 권씨에게 최대 12년 형을 구형했다.

권씨 변호인은 한국에도 추가 형사 기소에 직면한 점을 고려해 형량이 5년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결국 구형량보다 더 높은 형량이 선고됐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이번 사건 피해금액이 400억 달러(약 59조원)에 달하는 점을 지적하며 “규모면에서 보기 드문 희대의 사기 사건(a fraud on an epic, generational scale)”이라고 했다.

그는 “미 연방 기소 사건 가운데 권씨 사건보다 피해 규모가 큰 사건은 거의 없다”라며 검찰이 구형량에 상한선을 씌운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 연방법원의 양형기준에 견줘볼 때 15년형도 적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연방 법원)의 형사 재판 시스템에서 형량을 결정하는 최종 권한은 전적으로 판사에게 있다. 검찰 구형과 플리바겐이 있더라도, 판사는 양형기준을 참고하되 이에 구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판단한다.

죄질이 나쁘고 검찰이 가져온 합의안으로는 정의 구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재판부가 직권으로 형량을 3년 더 추가한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권씨가 작년 12월 31일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뒤 구금된 기간과 몬테네그로에서 송환을 기다리며 보낸 17개월의 구금 기간은 이미 형기를 채운 것으로 인정했다.

美에선 최대 130년도 가능했지만…권도형 “韓 보내달라”
미 연방검찰은 지난 2023년 3월 권씨가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된 이후 권씨를 증권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상품사기, 시세조종 공모 등 총 8개 혐의로 재판에 넘긴 바 있다. 권씨는 작년 말 몬테네그로에서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됐으며, 자금세탁 공모 혐의가 추가됐다.


이들 9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권씨는 최대 130년형에 처할 수 있었다.

권씨는 미국으로 신병 인도 직후 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주장했으나, 지난 8월 사기 공모 및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미 법무부는 플리 바겐 합의에 따라 권씨가 선고 형량의 절반을 복역하고 조건을 준수할 경우 이후 국제수감자이송 프로그램을 신청하더라도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권씨는 선고 형량의 절반을 복역한 후 한국으로 송환을 요청할 전망이다. 프로그램 신청이 승인될 경우 권씨는 남은 형기를 한국에서 보낼 수 있게 된다.

권씨는 미국 내 형사재판과 별개로 한국에서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된 상태여서 한국 송환 시 미국 재판과는 별개로 한국 법정에 설 전망이다.

권씨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후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송환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적 쟁송을 벌이다가 결국 미국으로 송환된 바 있다.

권씨 재판, 한국이라면?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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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혐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위반(사기, 횡령, 배임 등)이다.

한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을 경우, 한국 법원에서 선고 가능한 최대 형량은 이론적으론 무기징역 또는 징역 50년이다.

과거엔 “한국은 경제사범 처벌이 약하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이번 사건은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미국(15년)보다 훨씬 높은 형량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만약 무기징역을 선택하지 않고 유기징역을 내릴 경우, 형법상 기본 상한은 30년이다. 하지만 사기, 자본시장법 위반, 배임 등 여러 죄가 겹치는(경합범) 경우 가중 처벌을 통해 최대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징역 40년’이 선고된 판례도 나왔다.

최근 한국 법원은 조 단위 피해를 입힌 경제사범에게 법정 최고형에 가까운 중형을 선고하는 추세다.

‘펀드 돌려막기’로 특경법 위반 혐의를 받은 김재현 옵티머스 자산운용 대표의 경우 1조30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징역 40년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바 있다.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도 1조6000억원대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권 씨가 한국 송환을 요청해 재판을 받는다 해도 법적 최대 형량은 아니더라도 미국보다 높은 형량으로 선고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이 관건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은 가상자산 시장의 대규모 붕괴를 촉발한 ‘테라·루나’ 코인은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검찰은 루나 코인이 증권(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며 신현성 전 테라폼랩스 공동대표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범죄 행위와 관련된 물건의 소유권을 박탈해 국고에 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피고인이 사전에 처분할 수 없도록 보전하는 몰수보전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전 대표 등 공범으로 지목된 10명은 현재 3년 가까이 국내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국도 ‘올려치기’ 된다
권씨 판결과 마찬가지로 흔한 일은 아니지만, 판사가 검찰이 죄질에 비해 너무 약하게 구형했다고 판단하거나, 국민적 공분이 큰 사건에서 이른바 검찰의 구형보다 형량이 높은 ‘구형 상회 선고’가 이뤄지는 경우가 한국에도 있다.

사회초년생 등 200여 명에게 전세보증금 180억 원을 가로채는 등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의 경우 검찰이 징역 13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법정 최고형인 15년을 선고해 대법원에서 지난해 원심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주택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서민들의 삶을 무너뜨린 중대 범죄”라며 검찰 구형보다 더 무거운, 법이 허용하는 최대 형량을 선고했다.

대장동 사건 핵심 인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도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형량을 높여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뇌물 액수와 공직자로서의 책임 등을 고려할 때 검찰의 구형이 다소 가볍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