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강 지도] [4] 전남 순천·충남 계룡의 비결
10일 오후 전남 순천의 한 경로당에 모인 노인들이 보건소 직원과 함께 ‘손 체조’를 하고 있다. 순천시는 2016년부터 ‘찾아가는 마음 건강 상담실’ 사업을 하고 있다. 보건소 직원이 경로당, 마을회관 등을 찾아가 우울증 검사와 상담 등을 한다./ 김영근 기자 |
“그동안 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냐잉…." “우리 서로 더 자주 만나자.”
10일 오후 전남 순천 용당동의 한 경로당에서 70·80대 어르신 10여명이 서로 등을 토닥이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순천시 보건소가 이날 용당동에서 연 ‘찾아가는 마음 건강 상담실’ 자리에서였다. 보건소 상담사들은 이날 어르신들에게 “이웃들끼리 잘 보고, 잘 듣고, 잘 안아줘야 한다”며 “힘들 때는 우리 집 백구 부르듯이 109(자살 예방을 위한 상담 전화번호)로 연락하시면 된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이날 상담사들과 함께 동요 ‘고향의 봄’을 부르고 혈액 순환에 좋다는 손 체조를 했다. 정영희(87)씨는 매일 경로당을 찾아 친구들과 화투를 치고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정씨는 “며칠 전에도 상담사가 찾아와 한참 옛날 이야기를 했다”며 “오늘도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시간을 보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
순천은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전국 252개 기초자치단체에 거주하는 1만명을 조사해 산출한 ‘한국 건강 지수’에서 14위를 기록했다. 건강 지수 평가 상위권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경기 성남·용인과 부산 강서·동래구(9·10위), 대구 수성구(11위), 대전 서구(12위) 등 대도시 지역이 차지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은 우울감 경험 비율 등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순천은 정신 건강 지표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순천시는 2022년부터 ‘찾아가는 검진’ 사업도 시작했다. 순천역 광장과 대학교 취업박람회 등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우울증 선별 검사를 한다. 순천시보건소는 ‘찾아가는 검진’을 올해 15번 실시해 3716명을 검사했다. 이 중 정신 건강 고위험 시민 142명을 찾아내 일대일 방문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정신 건강이 악화되기 전 조기 검진을 받는 순천 시민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울증 조기 검진을 받은 순천 시민은 2022년 8532명에서 올해 2만4769명으로 3년 새 3배 가까이 증가했다.
10일 전남 순천의 한 경로당. 순천시문화건강센터 직원들이 경로방을 방문, 정신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김영근 기자 |
건강 전문가들은 “정신 건강 지수가 양호한 지방 도시들은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주민들과 소통·접촉한 곳들”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조사에서 정신 건강 지수는 비수도권 지역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경북 예천(98.88점)이 1위였고, 전남 곡성(98.50점), 전남 무안(97.88점) 순이었다.
순천은 시내를 흐르는 동천(東川)과 순천만 국가 정원, 순천만 습지 등 공원·숲 등 녹지 공간이 풍부하다. 언제든 나가 걸을 수 있는 공원이 많은 데다 복잡한 수도권과 달리 삶이 여유로워 정서적으로 안정되기 쉬운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자연 조건만으로는 가속화하는 고령화로 인해 증가하는 노인 고독·소외 문제에 대응하기 어렵다. 노년층의 우울감과 외로움을 해소하고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가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건강 전문가들은 “비수도권 지역일수록 정신이 건강하다는 건 옛말”이라며 “오히려 고립된 농촌 지역일수록 외로움·고독감을 느끼는 노인 인구가 많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오전 충남 계룡시 두마면 입암저수지. 유리판처럼 빛나는 호수 위를 청둥오리 6마리가 물살을 갈랐다. 965m 호숫가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을 걷던 원보윤(46)씨는 “입암저수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고요하다”면서 “10분 정도 차를 타고 저수지에 도착하면 가벼운 스트레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유승안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감독 시절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입암저수지를 자주 찾았다”고 했다.
계룡시는 인구 4만5000여명의 소도시다. 계룡산과 대둔산 줄기에 둘러싸인 계룡시는 한국 건강 지수 중 ‘정신 건강 위험 관리’ 항목에서 97.68점을 받아 전국 7위였다. 종합 건강 지수에서도 전국 21위였다.
계룡시 역시 지난 2월부터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우울증 선별 전수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어르신 10명으로 구성된 시니어 마음건강지킴이가 일일이 주민들을 찾아 우울증 선별 검사지를 배부해 시민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첫해인 올해는 1만8046세대에 검사지를 배부했고, 3550명의 정신 건강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가운데 우울감이 중등도 이상으로 나온 328명은 계룡시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심리상담, 병원 치료 지원을 받았다. 올해 8차례 심리 상담을 받은 김모(66)씨는 “심리 상담 선생님과 친구처럼 사소한 고민과 걱정을 공유했다”며 “이후 우울감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 했다.
순천·곡성·계룡 등 지방 ‘정신 건강 도시’들은 최근 3년간 우울감 경험 비율이 꾸준히 줄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연속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낄 정도로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우울감 경험률의 전국 평균은 11.6%(2023년)였다. 그런데 순천의 우울감 경험 비율은 2022년 7.4%에서 2024년 3.7%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곡성은 8.5%에서 1.4%까지, 계룡은 3.6%에서 2.5%까지 줄었다. 예천도 3.5%에서 1%로 줄었다. 윤영호 건강문화사업단장은 “행정을 통해 주민 우울감을 줄일 수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순천=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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