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요즘 진료실에서 자주 보게 되는 풍경이다.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들어온 건 꽤 오래전이지만 최근엔 우리 주변국이 아닌 먼 이국땅,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분들이 늘어나 진료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스마트폰의 번역 기능이 가능한 국가라면 조금은 수월할 텐데 그마저도 지원되지 않는 국가의 분들이 올 땐 서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결국 그림을 그려 소통하기도 하고 손짓, 발짓과 온몸을 사용해야 하는 보디랭귀지를 구사해야만 하는데 그럴 때면 간혹 오늘처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통증은 아픈 부위를 세게 누르는 표현을 쓰고, 기침은 소리를 기침하는 소리를 내보이면 쉽게 이해되지만, ‘설사’ 같은 단어를 표현한다든가 질환명이나 주의 사항을 설명해 줄 땐 여간 진이 빠지는 게 아니다. 보통의 환자 한 명을 진찰할 때보다 서너 배의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진료가 끝나고 게다가 두세 번 더 진료실 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하니 바쁜 시간에 대기자 명단에 읽기도 어려운 외국인 이름이 뜨면 조금은 꺼려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보면 먼 이국땅으로 건너와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지 않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을 맡아서 해 주고 있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고, 이런 순간의 꺼림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모든 국가의 언어를 번역해 주는 앱을 개발한다면 하는 꿈을 꾸곤 하지만 아직은 요원하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어려운 단어를 서툴지만 내 몸으로 쉽게 표현할 방법을 연구해 보는 수밖에는.
잠시 후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큰 키에 검은 얼굴의 사나이가 장염이라도 생겼는지 배를 움켜쥔 채 잔뜩 찡그린 표정이다. 아뿔싸 ‘설사’란 질문은? 난 다시 엉거주춤한 채 엉덩이를 뒤로 쓱 뺀다. 비록 몸치지만 설사를 표현한 내 몸짓에 낯선 이방의 젊은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초겨울, 차갑고 어색했던 진료실에 온기(溫氣)가 감돈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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