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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지수 1위 예천·2위 곡성, 상위 지역 30곳 중 서울은 2곳뿐

조선일보 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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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지수 1위 예천·2위 곡성, 상위 지역 30곳 중 서울은 2곳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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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강 지도] [3] 지역따라 신체·정신 건강 격차
서울 강남구의 한 정신과 의원에서 직장인이 상담을 받고 있다. 강남구의 인구 1000명당 우울증 진료 환자 수는 63.3명으로 전국 평균의 3배였다(왼쪽 사진).9일 경북 예천군의 한 파크골프장에서 주민들이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다. 예천군이 조성한 무료 파크골프장이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에 따르면 ‘한국 건강 지수’에 따르면 예천군은 정신 건강 지수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오른쪽 사진)/장련성 · 권광순 기자

서울 강남구의 한 정신과 의원에서 직장인이 상담을 받고 있다. 강남구의 인구 1000명당 우울증 진료 환자 수는 63.3명으로 전국 평균의 3배였다(왼쪽 사진).9일 경북 예천군의 한 파크골프장에서 주민들이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다. 예천군이 조성한 무료 파크골프장이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에 따르면 ‘한국 건강 지수’에 따르면 예천군은 정신 건강 지수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오른쪽 사진)/장련성 · 권광순 기자


9일 오전 9시 20분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 한 정신과 의원엔 상담을 받으러 온 10여 명이 줄 서 있었다. 이 병원은 오전 10시에 진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줄은 10m 넘게 이어졌다. 검은 패딩 차림의 30대 직장인, 후드를 눌러쓴 10대 청소년까지 나이와 복장이 제각각이었다. 공황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는 서초구 주민 A(40)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지만 상사의 폭언이 반복돼 스트레스가 심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이날 오후 경북 예천군 남본리 도심을 가로지르는 ‘황토 맨발길’에선 1.2㎞ 길이 산책로를 주민 30여 명이 걷고 있었다. 목줄을 채운 강아지와 산책하거나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도 눈에 띄었다. 한때 열차가 달리던 철길이 이제 주민들의 산책 명소가 됐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이곳에서 1㎞ 떨어진 서본리 한천변 인근 3만7000㎡(약 1만1000평) 넓이의 파크골프장에선 운동복 차림의 주민 40여 명이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골프장을 찾은 주민 박왕기(67)씨는 “소음과 매연이 없는 환경에서 자연을 자주 접할수록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올해 전국 252개 기초지방자치단체 1만명을 조사한 ‘한국 건강 지수’에서 지역별 건강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경기 과천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등 수도권 지역은 걷기와 운동 실천 비율 등이 포함된 신체 활동 지수는 최상위권이었다. 반면 우울·스트레스 등 정신 건강 지수는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인구 1000명당 우울증 진료 환자 수도 강남구 63.3명, 서초구 57.5명으로 전국 평균(21.6명)의 3배였다.

비수도권 중소 도시는 반대였다. 경북 예천군은 정신 건강 지수가 98.88점으로 1위였다. 정신 건강 지수에선 전남 곡성(98.50점), 전남 무안(97.88점), 경북 상주(97.85점)가 뒤를 이으며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 지역들의 신체 활동 지수는 상위 50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주민들이 느끼는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서울 강남 3구 등 수도권의 건강 지수 상위권 지역은 산업·고용이 안정되고 의료 접근성이 우수했다. 양재천·탄천·한강 등 하천과 녹지가 잘 갖춰져 있었다. 그 결과 신체적 건강 수준은 최상위권이었지만, 가혹한 경쟁과 극단적 비교 문화, 서로에 대한 혐오감 등에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도 많았다. 반면 비수도권 중소 도시 주민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었지만, 의료·생활 인프라는 부족했다. 건강 전문가들은 “수도권에선 신체는 건강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위험 수위에 다다른 ‘풍요의 역설’이, 반대로 비수도권은 마음은 편안하지만 신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여유의 함정’에 빠져 있다”며 “지역별 건강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맞춤형 처방이 시급하다”고 했다.


본지는 지난 2일부터 이날까지 일주일간 서울 도심 정신과를 찾아 환자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방문 이유를 물었더니 ‘비교·경쟁에 따른 압박감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강남에서 일하는 직장인 B(33)씨는 상사에게 “신입보다 못하다” “명문대 졸업생이 맞느냐”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했다. 서초구 직장인 박모(26)씨는 “퇴근해도 성과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불면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서초구에서 정신과 의원을 운영하는 이희창 원장은 “대기업 직장인, 로펌 변호사, 수험생까지 다양한 직종과 연령대의 환자들이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이날 예천에서 만난 주민들은 표정이 평온했다. 박병노(69)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난 2019년 퇴직하고 고향인 예천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서울 살 때는 마음이 급했는데, 예천에선 숨 한 번 크게 쉬면 다 풀린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선 유독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며 “어릴 때 봤던 주막거리나 산길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거리만 봐도 정겹고, 사람들끼리도 옛정이 남아 있다”고 했다. 경상북도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2020~2024년)간 다른 지역에서 예천으로 매년 평균 2164명이 귀농·귀촌했다. 도시에서 1년 이상 살다가 지방으로 옮긴 사람들 중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를 귀농, 단순히 거주지를 옮긴 경우는 귀촌이라고 한다.

질병관리청 지역건강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연속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낄 정도로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최근 10년(2015~2024년)간 줄곧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에도 비수도권 지역의 우울감 경험률은 6.1%로 수도권(7.0%)보다 낮았다. 우울증 위험 비율은 집계가 시작된 2017년 이래 매년 비수도권이 수도권보다 0.2~0.7%포인트 낮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역별 정신 건강 격차에 대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환경이 만든 구조적 질병”이라고 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도권은 기대 수준과 성취 압력이 높은 데다 인구 밀집도까지 높아 비교·경쟁 요인이 많다”며 “반면 비수도권 지역은 상대적으로 서로를 챙기는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고, 생활 속도도 느려 스트레스 분산에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삼성빛정신건강의학과 허정윤 원장은 “수도권에는 심리 상담·감정 노동 보호 같은 ‘마음 방역’ 인프라가, 고령화가 빠른 지방에는 운동 처방 등 ‘신체 활력’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지역별 생활 조건에 맞춘 투 트랙(Two-track) 정책이 건강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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