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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내란재판부에 법관회의도 반발

조선일보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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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내란재판부에 법관회의도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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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왜곡죄 등 위헌성 논란 커
재판 독립성 침해할 우려도”
與의총서도 수정 요구 이어져
전국 각급 법관 대표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8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 법안에 대해 “위헌성 논란과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전국법원장회의에 이어 일선 판사들도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 법안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법관대표회의는 이날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정기회의를 열고 “비상계엄과 관련된 재판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지대한 관심과 우려에 대하여 엄중히 인식한다. 다만 현재 논의되는 내란전담부 설치 법안과 법 왜곡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형법 개정안은 신중한 논의를 촉구한다”는 의안을 통과시켰다.

내란전담재판부와 법 왜곡죄 신설은 애초 이날 논의 안건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회의 중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이라 위헌성에 대한 지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긴급 상정됐다.

법관대표회의는 대법관 증원 등 상고심 제도와 법관 평가 제도 개편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서는 “사실심(1·2심) 강화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대한변호사협회의 평가를 법관 인사에 반영하는 개편안에 대해선 “재판의 독립과 사법 신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성급하게 개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이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 법안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국회가 삼권분립의 헌법적 원칙을 존중하고 사법부 독립이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토대임을 인식해 신중한 검토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관련해 법안 수정을 염두에 두고 추가 논의를 하기로 했다. “위헌 소지가 있는 내용은 수정하자”는 의원들의 요구가 이어진 때문으로 보인다.

8일 오전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렸다. 의장인 김예영(왼쪽에서 넷째)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박성원 기자

8일 오전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렸다. 의장인 김예영(왼쪽에서 넷째)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박성원 기자


◇“법왜곡죄, 나치 시대에 이용… 대법관 증원, 사법부 의견 반영돼야"

8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정기회의는 전국 법원 64곳의 법관 대표 126명 중 108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6시간가량 진행됐다. 법관대표회의는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에 대해 “위헌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놨다. 지난 5일 법원장급 판사 43명이 모인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두 법은 재판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를 밝힌 데 이어 일선 판사들까지 가세하고 나온 것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 행정과 법관 독립에 대해 법관들의 의견을 모아 입장을 밝히는 기구다. 2017년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를 계기로 상설화됐다.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의 진보 성향 판사들이 대부분 지도부를 맡아왔다. 그런 법관대표회의에서 여당 개편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자 “여당이 대법관 증원부터 시작해 연달아 위헌 소지가 큰 법안을 밀어붙이자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내란재판부·법왜곡죄 위헌성 커”

이날 법관대표회의에선 온라인으로 참석한 한 법관 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와 법 왜곡죄에 대해서도 입장을 표명하자”고 제안하면서 관련 토론이 이뤄졌다. ‘대법관 증원’과 ‘법관 평가 제도 개편’ 등 원래 안건에 대한 표결이 끝난 직후였다. 한 참석 법관은 “내란전담재판부 등에 대해 논의하자는 제안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찬성했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가 위헌적이라는 평가에 법관 대표들 사이에 큰 이견은 없었다고 한다. “사법부 외부에서 재판부 구성에 관여하는 것은 명백한 사법권 독립 침해”라는 의견과 “이미 벌어진 특정 사건을 콕 찍어서 적용하는 ‘처분적 법률’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는 것이다.


회의에선 법 왜곡죄 신설 법안에 대한 논의가 가장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판·검사가 법을 왜곡해 수사와 재판을 진행할 경우 처벌하는 이른바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와 관련해 한 참석자는 “‘왜곡’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헌법 원칙에 어긋나고 악용될 소지도 크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고 전했다.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 법 왜곡죄 조항이 있다’는 민주당 주장에 대해 한 참석자는 “독일에서 법 왜곡죄는 나치 시대에 이용됐고 이후로는 사문화된 법”이라며 “독일에서도 위헌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법인데 우리가 왜 도입해야 하느냐”고 했다.

한 법관 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나 법 왜곡죄의 위헌성에 대한 연구가 더 이뤄진 뒤에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냈지만, 두 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만 남겨두고 있는 시급한 상황을 고려할 때 입장을 밝히는 쪽으로 다수 의견이 모였다. 회의에서는 “여당이 법을 어떻게 수정하더라도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혀야 한다”거나 “결국 판사를 바꾸라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일부 참석자는 “이런 법안이 사법부 불신에서 비롯됐음을 고려할 때 법안의 위헌성에만 초점을 맞춰 우려를 표명하는 건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이에 ‘비상계엄 관련 재판의 중요성과 국민의 우려를 엄중히 인식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 안건은 표결에 참여한 법관 대표 79명 중 50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대법관 증원, 1·2심 강화 함께 논의해야”

법관대표회의는 민주당의 여러 ‘사법 제도 개편’ 법안도 논의한 뒤 “국민의 권리 구제를 증진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 의견이 논의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법부 참여 없이 다수당이 대법관 증원 등 중대한 사법 제도 개편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법관대표회의는 대법관 증원 등 상고심 제도 개편과 관련해서는 “사실심(1·2심) 강화를 위한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법관대표회의는 대한변호사협회의 평가를 법관 평정에 반영하자는 민주당 법안에 대해선 “충분한 연구를 거치고 법관들의 의견을 균형 있게 수렴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법관대표회의는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고 검증 기능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대한변협도 이날 성명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 법안에 대해 “헌법상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 원칙의 관점에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변협은 “국회가 특정 시점과 사안에 따라 입법부가 재판부 구성이나 법관·검사의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입법을 반복한다면, 국민이 입법 취지의 순수성에 공감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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