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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억달러 대미투자시 ‘한국판 러스트 벨트’···지역 고용 붕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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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억달러 대미투자시 ‘한국판 러스트 벨트’···지역 고용 붕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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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서강대 교수 “조용한 산업 공동화 우려”
“환율 1500원대 시간 문제···고환율 고착화될 것”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한·미 관세 협상 결과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이뤄지면 국내 지역 산업과 고용 기반이 무너지는 한국판 ‘러스트 벨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규모 미국 투자로 달러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 고환율 현상이 심화하고, 한국은행의 금융 안정 기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8일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주최한 ‘대미투자특별법 긴급진단 토론회’에서 “3500억달러가 미국으로 나가면 장기적으로 ‘조용한 산업 공동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북 군산에서는 2017~2018년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한국GM 공장이 잇따라 폐쇄돼 지역 경제가 무너진 바 있다. 허 교수는 당시 ‘급격한 충격’이 왔다면, 대미 투자는 한국 경제 전반에 ‘조용한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허 교수는 “국내 자본이 해외로 가면 혁신을 일으키더라도 그 기술이 다시 우리나라 공장으로 들어오기 어려워진다”며 “설비와 연구개발(R&D) 국내 내재화가 어려워져 앞으로 10년간 국내 공장의 기술력이 부족해지고, 공장 자체도 없어지는 산업 공동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등 전략산업 투자가 미국에 편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허 교수는 “우리 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조선, AI 등에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 분야는 한국도 미래 먹거리로 삼는 핵심 산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미 투자 증가로 국내 R&D 축소→핵심 공정 해외 이전→고급 인력 미국 유출→국내 협력업체 생태계 붕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대미 투자로 금융·재정 안정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크다. 허 교수는 “외환당국이 보유한 외화자산의 현금 수익만 미국에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은행의 금융 안정성이 영향을 받고, 통화정책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설명과 달리 대미 투자는 재정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허 교수는 “매년 200억달러를 정부가 현금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한국은행 외화자산 운용수익이 2023~2024년 기준 88억달러밖에 안 돼 모자란 돈은 정부 정책자금이나 융자, 산업은행 등의 정책금융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국채가 늘어나 국가 재정건전성에 부담을 준다”며 “앞으로 20~25년 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가 100%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미 투자로 이 시기가 10~20년 뒤로 앞당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미 투자가 늘면 고환율이 ‘뉴 노멀’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획재정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해외 직접 투자액 약 640억달러 중 221억달러가 미국에 투자됐다. 허 교수는 “정부·민간기업 투자를 합쳐 앞으로 매년 500억달러 정도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일본, 유럽도 대미 투자를 늘리면 미국 자산 수요가 급격히 늘어 고환율 시대로 접어드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짚었다. 그는 “달러·원 환율이 1500원대로 오르는 건 시간 문제이고, 그런 상태가 상향 고착화할 것”이라며 “정부는 고환율 시대를 가정하고 경제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 공동화를 막으려면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가 다시 국내 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허 교수는 “정부가 대미투자특별법을 대체할 만한 근본적인 산업 정책을 마련하고, 해외투자가 국내로 환류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단독]한은 “미국 요구대로 3500억달러 투자 땐 국내 산업 공동화·인재 유출 리스크”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211000011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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