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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항모서 발진한 전투기, 日 F-15에 2차례 레이더 조준했다

조선일보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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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항모서 발진한 전투기, 日 F-15에 2차례 레이더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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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갈등, 군사 마찰로 번져
중국 해군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6일 일본 오키나와섬 인근 공해 상공에서 일본 자위대 전투기를 향해 두 차례 레이더를 조사(照射·조준해서 비춤)했다고 일본이 밝혔다. 레이더 조사는 미사일 공격 전 공격 대상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행위로, 자칫 무력 충돌로 번질 수 있는 군사적 위협으로 여겨진다. 중국은 “(일본 발표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발했지만, 레이더를 조준했는지 여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有事·전쟁 등 긴급 사태)시 무력 개입’ 시사 발언으로 불거진 중·일 대립이 외교·문화·경제에서 군사 마찰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7일 새벽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사안이 발생한 것은 극히 유감이며, 중국 측에 강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엄중히 요청했다”며 “이번 레이더 조준은 항공기의 안전 비행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위험한 행위”라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이날 “냉정하고도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면서 “중국군의 동향을 주시하고, 우리나라(일본) 주변의 바다와 상공에서 경계 감시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2013년 1월 중국 함정이 동중국해에서 일본 호위함에 화기 관제 레이더를 조준한 적은 있으나, 양국 전투기 간 레이더 조준 논란이 벌어진 건 처음이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遼寧艦)은 6일 구축함 3척과 함께 오키나와섬과 미야코섬 사이(미야코 해협)를 지나 태평양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랴오닝함은 오키나와 본섬 남동쪽의 공해상에서 함재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출동시켰고 이에 일본 F-15 전투기가 중국 전투기의 영공 접근을 경계하기 위해 긴급 발진했다. 중국 전투기의 일본 영공 침범은 없는 상황이었다.

6일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함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경계에 나선 일본 전투기를 향해 수차례 레이더를 조준하면서 양국 갈등이 군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4월 서태평양 해상에서 훈련에 참가한 랴오닝함./로이터 연합뉴스

6일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함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경계에 나선 일본 전투기를 향해 수차례 레이더를 조준하면서 양국 갈등이 군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4월 서태평양 해상에서 훈련에 참가한 랴오닝함./로이터 연합뉴스


항모에서 발진한 중국 J-15 전투기는 오후 4시 23분쯤부터 3분간 일본 전투기를 향해 간헐적으로 레이더를 쐈다. 이어 오후 6시 37분부터 약 31분간 중국 함재기는 또 다른 일본 F-15 전투기에도 레이더를 조준했다.

전투기의 레이더 조준은 전파의 반사를 계산해 목표물과의 거리를 측정한다. 단순 수색 용도로도 쓰이지만 공격 목표를 정하는 화기 관제이기도 하다. 한·일 간에도 2018년 한국 해군이 일본 초계기에 레이더를 조준했다는 논란으로 수년간 극도의 갈등을 빚었다. 중국의 레이더 조준과 관련, 일본 방위성은 “수색 용도라면 간헐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미사일 공격을 전제한 도발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국군은 일본이 ‘정상적 훈련’을 방해했다며 비난했다. 왕쉐멍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대변인은 7일 소셜미디어에서 “최근 랴오닝함 항모 편대(전단)는 미야코 해협 동쪽 해역에서 정상적으로 함재 전투기 비행 훈련을 조직했고, 사전에 훈련 해·공역을 발표했다”면서 “그 기간 일본 자위대 비행기가 여러 차례 근접해 소란을 일으켜 중국의 정상적인 훈련에 심각하게 영향을 줬고, 비행 안전에 위험을 미쳤다”고 했다. 왕 대변인은 “우리는 일본이 즉시 중상·비방을 중단하고 일선의 행동을 엄격히 통제하길 요구한다”고 했다.



수산물 수입 금지, 여행 자제령, 공연·영화 금지 등으로 일본을 압박하던 중국이 이른바 ‘회색지대’ 전술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대가 즉각 반격하기 애매한 저강도 도발을 반복하고 점진적으로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상대국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달 초 100척 이상의 해군·해안경비대 함정을 황해 남부에서 동중국해·남중국해·태평양 일부 지역에 배치했다. 일본에서 반발 조짐을 보이자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국제법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는 행위에 과잉 해석을 하거나 지나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했다.

지난 2일에는 중국 해경이 일본과 영토 분쟁 지역인 오키나와현 센카쿠 열도(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에서 일본 어선을 몰아내기도 했다.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에서 버젓이 실력을 행사한 것이다. 또 지난달 16일에는 함포를 탑재한 중국 해경선 4척이 일본 해경보안청 순시선의 퇴거 명령을 무시하고 센카쿠 인근 영해에 진입했다. 중국 해경국은 “댜오위다오의 해역을 순찰했으며, 이는 법에 따른 합법적인 권리”라고 했다.

추가적인 대립을 회피하려는 일본에겐 마땅한 반격 수단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의 자위대 호위함은 작년 9월 이후 세 차례 대만해협을 통과해 중국을 견제했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이후엔 자제하는 분위기다. 요미우리신문은 자위대 고위 간부를 인용, “지금 (자위대 함정이) 대만해협을 통과하면 ‘일본이 무력 개입 의사를 행동으로 보였다’는 중국의 선전에 이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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