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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고기 먹으면 목 짧은 아기” 임신·출산 문화 이렇게 변했네

중앙일보 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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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고기 먹으면 목 짧은 아기” 임신·출산 문화 이렇게 변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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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출산으로 맺어지는 관계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조명, 백일 저고리, 아빠가 쓴 육아일기 등 328건의 전시자료를 선보인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출산으로 맺어지는 관계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조명, 백일 저고리, 아빠가 쓴 육아일기 등 328건의 전시자료를 선보인다. 연합뉴스



“토끼고기를 먹으면 아기 눈이 붉어지거나 언청이가 된다” “자라고기를 먹으면 목이 짧은 아기가 태어난다” “산달에 아궁이 혹은 굴뚝을 수리하지 않는다”

아기를 낳기 전 산모와 가족이 지켜야 할 ‘출산 금기’로 전해져 온 속설이다. 일부는 버젓이 책에도 실렸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1643~1715)이 농업기술과 일상생활에 대해 서술한 책 『산림경제』에는 정력에 좋아 자식을 갖게 하는 계육(닭고기)과 작육(참새고기), 임신 중 먹으면 언청이를 낳는다는 토육(토끼고기) 등이 언급돼 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미신에 불과하지만 한 생명체를 기다리면서 산모는 물론 가족들이 얼마나 조심하며 처신했는지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부터 오늘날까지 출산을 둘러싼 풍속과 시대별 변천사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구 경복궁 내)에서 내년 5월 10일까지 이어지는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다.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100개의 옷감을 이어 만든 백일 저고리, 아빠가 쓴 육아일기, 아이를 위해 1000명의 글자를 받아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등 328건의 유물·자료가 소개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를 연다. 사진은 조선 후기 산실을 재현한 전시장 모습.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를 연다. 사진은 조선 후기 산실을 재현한 전시장 모습.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를 연다. 사진은 출산 관련 용품을 모아둔 전시장 풍경.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를 연다. 사진은 출산 관련 용품을 모아둔 전시장 풍경.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의 시작은 20세기 초 조선인들의 평균적인 산실(産室)을 재현한 공간이다. 삼신짚과 대야 등과 함께 미역국에 쌀밥이 차려진 밥상에서 고통과 기쁨이 함께 했을 분만의 순간을 짐작해본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을 빠져나오듯 좁은 복도를 지나 확 넓어지는 본 전시실에선 서양 의학 도입과 함께 확 달라진 임신·출산 문화를 세세하게 돌아볼 수 있다.

가령 과학시대 이전의 출산에서 가장 큰 공포는 난임과 난산이다. 주술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려 한 부적, 아기를 안고 있는 무학대사를 그린 그림 등이 소개된다. 순산을 기원하는 문화는 다른 나라도 다르지 않아서 산모를 위한 의례에 사용하는 말리 보보족의 가면, 인도의 순산 기원 의례인 발라이카푸, 다산을 기원하는 페루의 파차마마 신상 등이 그 시절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준다.

전통 의학의 지식 범위 안에서 난임을 해결하려 한 흔적도 엿본다. 1434년에 편찬한 임신·육아 관련 의학서 ‘태산요록'(胎産要錄)’은 임신과 태교의 방법,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법 등을 소개했다. 1910년대에 출시된 태양조경환(胎養調經丸) 약은 ‘이 약을 먹으면 자궁병이 낫고 임신할 수 있어 자식이 없는 비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 언론설명회에서 참석자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출산으로 맺어지는 관계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조명, 백일 저고리, 아빠가 쓴 육아일기 등 328건의 전시자료를 선보인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 언론설명회에서 참석자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출산으로 맺어지는 관계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조명, 백일 저고리, 아빠가 쓴 육아일기 등 328건의 전시자료를 선보인다. 연합뉴스


서양 의학이 도입되면서 임신·출산은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받게 됐다. 조산원의 시대를 거쳐 산부인과 병원이 자리잡고 초음파·인큐베이터 등 첨단 장비를 통해 보다 안전한 출산이 가능해졌다. 이와 함께 ‘가족계획’ 등 정부 정책이 출산 문화에 끼친 영향도 돌아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를 연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를 연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신생아를 반기고 축복하는 문화의 변천도 눈길을 끈다. 아이의 백일을 기념해 백 조각의 천을 이어 만든 백일옷은 건강과 장수를 비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천 명이 한 글자씩 써서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을 돌상에 올리기도 했다. 돌잡이 대상이 실이나 붓에서 마이크·청진기 등으로 바뀐 풍속에서 세대 차를 곱씹을 수 있다. 임신한 부모가 가족이나 친구에게 아기의 성별을 공개하는 젠더 리빌(Gender Reveal) 문화 등 요즘 트렌드도 담았다. 입양·난임 시술 등을 실제 경험자의 이야기로 전하는 공간에선 각별한 뭉클함이 전해진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를 연다. 사진은 남자아이 백일옷으로 천 백조각을 꿰매 만든 저고리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를 연다. 사진은 남자아이 백일옷으로 천 백조각을 꿰매 만든 저고리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지난해 합계출산율(한 여자가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4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인 나라이지만 전시 공간엔 ‘저출생’ ‘인구 위기’ 등의 메시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출산 장려 캠페인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전시이길 원했다”는 박물관 측 기획의도가 깔렸다.


장상훈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출산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을 넘어 사회와 문화가 오랜 시간 함께 만들어온 중요한 공동체의 경험”이라면서 “여러 세대가 함께 즐기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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