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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관광객, 태국보다 베트남 더 많이 찾는 이유는[아세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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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관광객, 태국보다 베트남 더 많이 찾는 이유는[아세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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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판도 흔들리는 관광 산업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1일 베트남 하노이 관광지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서 한 무리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1일 베트남 하노이 관광지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서 한 무리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칭 꾸어라이! 저어 리 스 구라오 더 쓰먀오(이쪽으로 오세요! 여기는 오래된 사원이에요.)"

이달 1일 베트남 하노이. 6세기 지어진 쩐꾸옥 사원 앞에 대형 관광버스가 줄지어 멈춰 서자 중국인 단체 관광객 수십 명이 쏟아져 내렸다. 사원 마당은 순식간에 중국인들로 가득 찼다. 인근 대표 관광지 호안끼엠 호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어 팻말을 단 관광버스 10여 대가 잇달아 진입하며 도로가 금세 마비됐다. 교통 공안까지 나와 통제에 나섰다.

거리에서는 베트남어보다 중국어가 더 또렷하게 들렸다. 이곳이 베트남인지, 중국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다. 그간 한국어로 손님을 부르던 짝퉁 의류·잡화 상점 직원들은 “라이 칸칸(한 번 보세요)”이라고 중국어로 호객하며 중국인 손님맞이에 열을 올렸다. 호수 근처에서 노상 찻집을 운영하는 투이는 “이곳에서 7년째 장사하지만 요즘처럼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모습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관광지인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서 도로 정리에 나선 교통 공안 앞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관광지인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서 도로 정리에 나선 교통 공안 앞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신흥 강자 부상


잔잔한 바다와 따뜻한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가 있는 휴양지, 또는 오토바이가 뒤엉킨 고도(故都)와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도심 속 사원. ‘동남아시아’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풍경들이다. ‘동남아=관광지’라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다.

실제 관광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은 편이다. 세계여행·관광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관광 산업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3%, 고용의 12.4%(4,015만 개)를 차지했다. 한국(각 3.8·4.7%)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은 규모다.

1일 베트남 하노이 구도심 관광지가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1일 베트남 하노이 구도심 관광지가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그중에서도 태국은 동남아 전통의 ‘관광 대국’으로 여겨졌다. 관광은 GDP의 약 20%를 차지하는 국가 핵심 산업이다. 외국인 관광객 지출 금액만 GDP의 12%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 판도가 뒤흔들리고 있다. 태국으로 향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정체·감소하는 사이, 베트남이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며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박종범 기자

박종범 기자


베트남 통계청(GSO) 집계를 보면, 올해 1~10월 외국인 여행객은 1,717만 명으로 지난해 한 해 방문객 수(1,758만 명)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태국을 찾은 관광객은 2,669만 명으로 전년 동기(2,838만 명) 대비 7% 가까이 줄었다. 절대 규모는 아직 태국이 앞서지만, 양국 간 격차는 해마다 좁혀지는 모양새다.

한국 관광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은 관광이 주력 산업도 아니고, 정부가 지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성장 곡선이 이례적으로 가팔라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일 베트남 하노이 관광지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1일 베트남 하노이 관광지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태국 치안 불안 여파


급격한 변화를 이끈 결정적 변수는 ‘중국인’이다. 태국 관광스포츠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태국을 찾은 중국인은 약 377만 명으로 1년 새 40% 가까이 줄었다. 작년만 해도 매달 50만 명을 넘기던 중국인 관광객이 올해는 1월(약 66만 명)을 제외하고는 줄곧 20~30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같은 기간 베트남 방문 중국인은 약 433만 명으로 전년 대비 41% 늘었다. 중국인이 태국보다 베트남을 더 많이 찾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말 태국에서 납치됐다 올해 1월 구출된 중국 배우 왕싱(앞 줄 오른쪽)이 태국·미얀마 국경 근처 딱주 매솟에서 태국 경찰과 대화하고 있다. 태국 왕립 경찰

지난해 12월 말 태국에서 납치됐다 올해 1월 구출된 중국 배우 왕싱(앞 줄 오른쪽)이 태국·미얀마 국경 근처 딱주 매솟에서 태국 경찰과 대화하고 있다. 태국 왕립 경찰


배경에는 태국의 치안 불안이 자리한다. 중국인 관광객을 노린 납치·인신매매 사건이 이어진 데다, 지난해 말 중국 배우 왕싱이 ‘가짜 캐스팅 제안’에 속아 태국에 입국한 뒤 미얀마 사기 조직에 끌려간 사건은 충격을 키웠다. 그는 올해 1월 가까스로 구출됐다. 삭발된 머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왕싱은 중국계 범죄조직 감시하에 온라인 사기·보이스피싱 등 범죄를 강요받았다고 진술했다.

태국호텔협회는 “태국에 와본 적이 없는 중국인들까지 두려움을 호소한다”며 “정부가 얼마나 치안을 강화했는지 더 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중국인 감소로 태국이 놓친 관광 수입이 약 35억 달러(약 4조8,000억 원)에 달했다는 추정도 나온다.


음력 설 기간인 지난해 2월 태국 방콕에서 중국인 관광객 일행이 왕궁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방콕=허경주 특파원

음력 설 기간인 지난해 2월 태국 방콕에서 중국인 관광객 일행이 왕궁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방콕=허경주 특파원


올해 2200만 명 유치 예상


불안해진 중국 관광객의 발길은 자국과 가까운 베트남으로 향했다. 쓰촨성 출신 후자(33)는 당초 태국을 여행하려다 안전 우려 때문에 목적지를 바꿨다고 했다. 최근 남편, 두 아들과 베트남 하노이에서 중부 다낭까지 고급 침대 버스로 여행했다는 그는 “2주간 3,000달러(약 414만 원)를 썼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호안끼엠 호수 인근을 도는 버기카(관광용 전기차) 매표소 직원도 “한국인이 꾸준히 많았지만 올해 들어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차량 수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설명했다.

관광 붐은 바로 실적으로 이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계열 시장분석회사 BMI는 올해 1~8월 베트남 관광 소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1%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 수도 2,2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베트남 다낭 인근의 유명 관광지 호이안 올드타운 거리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호이안=허경주 특파원

지난해 12월 베트남 다낭 인근의 유명 관광지 호이안 올드타운 거리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호이안=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당국과 업계도 ‘물 들어올 때 노 젓기’에 나섰다. 중국과 인접한 북부 꽝닌성은 민관 협력으로 패러글라이딩, 열기구 축제를 마련해 중국 관광객들이 더 오래 머물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아 ‘경기 다낭시’라고 불리는 중부 다낭도 호텔부터 길거리 음식 노점, 마사지 가게 등 곳곳에 중국어 안내문을 붙였다.

주요 호텔도 중국어 가능 직원을 추가 채용하며 중국인 관광객맞이에 적극 나섰다. 항공사들도 중국 노선 저가 항공편을 늘리고 있다. 샤오홍슈·더우인 등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베트남 관광 이점을 알리는 영상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SNS인 샤오홍슈에 베트남 관광을 홍보하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중국 SNS인 샤오홍슈에 베트남 관광을 홍보하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태국은 침체된 관광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고심하고 있다. 관광스포츠부는 여행객 20만 명에게 무료 국내선 항공권을 제공하는 파격 혜택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여기에 태국 밧화 가치가 4년 만에 최고로 치솟으며 나 홀로 강세를 보인 탓에 부담을 느낀 관광객이 더 멀어지는 상황이다. 컵싯 실파차이 태국 카시콘은행 연구원은 로이터에 “밧화 강세가 좋지 않은 시점에 찾아왔다”며 “관광객들이 더 나은 가치를 찾아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태국 정부는 올해 관광객 목표치를 당초 3,700만 명에서 3,300만 명으로 하향 조정했지만, 이 마저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방콕에서 근무 중인 한 한국 기업 주재원은 “베트남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 태국을 압박하는 와중에 태국의 ‘자존심’이던 관광 분야까지 위협하니, 요즘 태국 기업 임원들은 회의 때 베트남의 ‘V’ 자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린다고 한다”고 전했다.

하노이=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