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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만의 세상만사]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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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만의 세상만사]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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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언제나 예상을 뒤엎는다. 전혀 그럴 것 같지않아 포기하려는 순간 반전의 결과를 내놓는다. 알면 알수록 알 수 없고 이상하리만치 이상하지만 대단한 사람들인 건 맞는 것 같다.

오래전 이런 말이 있었다.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 같다.” “이 나라는 100년이 지나도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잘 난 지식인들’도 대체로 인정했지만 겉보기가 전부는 아니었다.

전두환의 ‘체육관 선거’를 찬성했던 그 사람들. 그들은 불과 몇 년 후 자택 감금 상태의 김영삼, 김대중(민추협)에게 67석의 국회의석을 몰아줘 단번에 제1야당이 되게 했다. 절대 반전이었고 이 돌풍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비상계엄과도 같았던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속에서도 연인원 500여만명이 매일 거리로 나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정치는 툭하면 파행이고 뒷걸음질이었으나 이 나라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일했다. 제대로 된 자원 하나 없고 파 먹을 땅도 변변치 않았지만 사람을 밑천 삼아 배우고 또 배우며 아리랑 고개를 넘고 또 넘었다.

IMF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세계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 나라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며 ‘이번은 만만치 않다’고 했다. 정말 IMF시절은 고통의 세월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은행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금이 IMF로부터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시라도 빨리, 남보다 먼저 금을 넘기기 위해서였다. 세계사에도 유례없는 이 나라 사람들의 ‘희한한 행렬’을 보며 그들은 다시 말했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결코 망할 수 없다.”


‘희한한 행렬’은 태안 앞바다에서 또 나타났다. 홍콩 유조선이 내뱉은 기름범벅의 바다는 제아무리 조치를 잘해도 20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죽음의 바다는 1년여만에 다시 숨을 쉬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12월의 바람속에서 기름때를 닦고 또 닦은 덕분이었다. 해외언론들은 ‘정말 특별한 이 나라 사람들이 이룬 우공이산의 기적’이라고 했다.

K-컬처, K-경제, K-방산 역시 일찍이 예상 못한 ‘희한한 광경’이다. 한때는 베끼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고급스럽게 돌변할 수 있었을까. 쌓이고 쌓인 흥과 한과 끼의 힘이지만 보통 일은 결코 아니다.

정치만 뺀다면 확실하게 세계 일류인데 그 무지한 정치마저도 이 나라 사람들은 현명하게 만들었다. 1년 전 한밤중 느닷없이 튀어나온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은 이해불가였다. 그 소리가 나오자마자 많은 국민들이 당연한 듯 여의도로 달려갔다.


누가 나서서 모의하지도 않았음에도 국회의사당 앞은 인산인해였고 시위는 아름다웠다. 극히 흥분되고 기분 나쁜 상황이었지만 K-팝의 나라 답게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축제 같은 시위로 추락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되 올려 나라의 품격을 더 높였다.

격랑의 1년. 오늘을 맞이할 수 있는 건 그들, ‘참 따뜻하고 고상하며(펄벅)’,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드크레센조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교수)’ 이 나라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이영만 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