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의료 안전과 혁신의 새 균형점
배병준 현대바이오사이언스 사장 |
기존 치료로는 한계가 뚜렷했던 중증·난치 질환에서 재생의료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시력을 잃어가던 유전성 망막질환 환자가 유전자 치료를 통해 다시 세상을 보고, 백혈병 환자가 개인 맞춤형 면역 세포 치료제인 CAR-T 치료로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한다. 모발 복원처럼 비교적 가벼운 분야에서도 삶의 질을 되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제 재생의료는 더 이상 낯선 기술이 아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 재생의료 시장은 2030년 180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재생의료 진화 속도에 맞춰 각국은 규제를 선제적으로 정비했다. 미국은 21세기 치료법(21st Century Cures Act) 기반 RMAT(재생의료 신속개발 지정) 제도로 초기 임상만으로도 조기 승인에 진입하게 했고, RWE(실사용근거)를 사후 검증에 활용한다. 일본은 재생의료안전법으로 위험도를 Class I-III로 나누고, 중저위험 시술은 민간 인증위원회 검토 후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도록 했다. ‘먼저 사용하고, 사후 평가하는’ 재생의료제품의 조건부 승인 제도도 작동 중이다. 대만도 중저위험 세포치료를 병원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길을 열어 두었다.
반면 한국은 조건부 허가 제도가 있지만, 초기 임상 근거만으로 조기 승인을 받은 실질적인 사례와 실사용근거(RWE)를 활용하는 유연한 평가 구조가 제한적이다. 이런 공백 속에서 국내 기업의 새로운 세포·유전자치료제 허가는 수 년째 멈춰 있다. 전주기재생의료사업단의 지원을 받은 다수 과제가 임상에 진입했음에도, 실제 첫 허가는 2030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한국 의료의 역량은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됐다. 필자가 2015년 보건산업정책국장으로 재직하며 제정을 주도한 ‘한국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법’ 이후, 지난 10년간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40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정작 재생의료 분야에서는 국민이 해외로 나가는 ‘역(逆) 의료관광’이 심화되고 있다. 모발·피부재생·항노화 목적의 자가세포 치료를 위해 일본·대만으로 떠나는 이들이 매년 2만 명이 넘는다. 연간 2000억 원 이상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셈이다. 규제가 국민과 국익을 국외로 내모는 현실이다.
한국도 이제 균형점을 다시 그려야 한다. 특히 모발·피부·연골·치주 등 자가세포 기반 중저위험 시술은 면역 거부 반응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며, 오염이나 변질 위험 또한 낮다. 이미 국내외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분야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배양된 자가 면역세포까지 중위험으로 분류하여 연구 단계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 임상연구를 마친 뒤에야 희귀·중증·난치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구조다. 위험도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면 환자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
더불어 재생의료심의위원회가 모든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병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상시 심의체계를 기술유형별로 강화해야 한다.
재생의료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중요한 것은 안전을 지키되 혁신의 문을 닫지 않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균형을 다시 세워 재생의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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