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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63년 만의 해양장 합법화, 여전히 깜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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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63년 만의 해양장 합법화, 여전히 깜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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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열차사고 하청업체 대표·관리자 등 3명 구속
1월부터 5㎞ 이상 떨어진 바다에
해양장 산업화…불법도 고개
몇 건 이뤄졌는지 정부도 몰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를 다룬 영화 '1987' 중 박 열사의 아버지와 형이 박 열사의 영정 사진과 화장한 유해를 안고 얼어붙은 강가에 서 있다. 슬픔이 극대화된 장면이지만 유해를 강에 뿌리는 것은 불법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를 다룬 영화 '1987' 중 박 열사의 아버지와 형이 박 열사의 영정 사진과 화장한 유해를 안고 얼어붙은 강가에 서 있다. 슬픔이 극대화된 장면이지만 유해를 강에 뿌리는 것은 불법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해 이맘때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조명가게'에는 염습사 사제가 나온다. 젊은 여성 신입이 "시체에서 소리가 났어요"라며 화들짝 놀랐다가 스승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조용히 해. 들으신다. 시체가 아니라 고인. 죽어서도 사람이야."

"고인에게 예의를 지키라"는 스승의 엄명에 제자는 시신을 향해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한다. 염습을 마치고 냉장고에 입실한 시신 앞에서 사제는 또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드라마에서는 염습사로 나왔지만 법적으로 이들은 장례지도사다. 이승과의 이별을 앞둔 고인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대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에, 또한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기에 고인에게 예를 다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지만 법은 그렇지 못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에 시신이란 말이 처음 나온 건 10년 전이다. 장사법이 1961년 12월 제정돼 이듬해 1월 시행된 이후 2015년 초까지 54년 동안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고인은 그냥 '시체'였다. 매장은 시체를 땅에 묻고, 화장이란 시체를 불에 태워 장사하는 것이었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부모이거나 형제자매 또는 배우자, 혹은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 하는 자녀이기에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

법률에 장례 문화를 온전히 담아내야 한다는 지속적인 요구에 시체 등의 용어가 바뀌었고, 2008년에는 화장 뒤 골분을 나무 밑에 묻는 자연장이 도입됐다. 그리고 올해 1월 또 한 번의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장사법 일부개정에 따른 시행령이 갖춰져 골분(骨粉)을 바다 등에 뿌리는 산분장(散粉葬)이 처음 합법화됐다. 바다에서 이뤄지는 산분장은 해양장이라고도 불린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비극적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숱하게 나왔던 그 장면, 골분을 바다나 강에서 흩날리는 장례 방식이 이전까지는 불법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알게 모르게 이뤄졌지만 행위의 주체, 이뤄지는 장소와 시간대, 목적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단속은 불가능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도 관련 정보나 단속 통계 자체가 없다.


이랬던 산분장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왔지만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바다에서만 가능하다. 강이나 호수 등 내수면에서의 산분장은 여전히 불법이다. 해양장을 하고 싶어도 요트를 소유했거나 어민이 아닌 이상 자력으로 이 조건을 충족하기는 불가능하니 산업화는 뻔한 일. 연초부터 인천을 중심으로 해양장 대행업체들이 나타났다. 이 중 세 업체는 인천 중구 연안부두와 남항에서 유족들을 배에 태운 뒤 육지에서 5㎞를 채 나가지 않고 골분을 뿌리다 9월 인천해경에 적발됐다. 이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해경 조사 결과 세 업체가 인천에서 올 1~6월 대행한 해양장만 1,800건에 이른다.

그렇다면 해양장 첫해인 올해 얼마나 많은 고인이 바다에서 영면에 들어갔을까. 현재로서는 정확한 숫자를 알 길이 없다. 9월 복지부에 청구한 정보공개 관련 회신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여파로 최근에야 왔는데 '정보 부존재'다. 대행업체가 있는 지자체들의 관할 사항이라는 답변이니, 업체를 통한 해양장 건수 집계에 그칠 듯하다. 63년 만의 합법화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해양장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깜깜이다.

김창훈 산업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