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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때도 송환 촉구했는데… 北 억류 국민 잊어버린 李정부

조선일보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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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때도 송환 촉구했는데… 北 억류 국민 잊어버린 李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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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처음 듣는 얘기’ 논란일자 대통령실 뒤늦게 “해결 시급”
대통령실은 4일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문제와 관련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조속한 남북 대화 재개 노력을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이 북한 억류 국민에 대한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억류된 한국 국민들의 석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북한이 우리 국민을 10년 이상 억류하고 있는데도 대통령이 그 사실조차 모를 만큼, 정부 내 논의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북·중 접경지 활동 중 억류

대통령실은 이날 배포한 자료에서 “현재 탈북민 3명을 포함해 우리 국민 6명이 2013년부터 2016년에 걸쳐 간첩죄 등 혐의로 억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문제의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억류 국민 대부분은 북·중 접경지에서 구호·선교·취재 활동 등을 하다가 북한 당국에 끌려갔다. 그래서 체포·억류 경위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북한 보위부의 유인 혹은 납치 작전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정부가 신원을 공개한 억류자는 중국 단둥에서 구호·선교 활동을 하다가 북에 억류된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3명이다. 북한 보위부는 2013년 10월 김정욱 선교사를 억류한 뒤 “평양에 침입”한 “남조선 정보원 첩자”를 체포했다고 했다. 이듬해 5월 재판에서 그는 국가전복음모죄, 비법국경출입죄 등 혐의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김국기·최춘길 선교사도 2014년 유사한 혐의로 체포돼 2015년 무기노동교화형이 확정됐다. 당시 정부는 이들이 국정원과 관련 있다는 북한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나머지 억류자들은 탈북민으로 한국 국적 취득 후 중국에 갔다가 실종된 경우다. 정부는 ‘북한 내 가족’의 신변 안전이 우려된다며 이들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2016년 5월 억류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현철씨는 그해 7월 북한 당국이 평양에서 연 기자회견에 불려 나와 “북한 고아를 납치해 오면 1인당 1만달러씩 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밀입북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이 억류자를 “선전전에 이용”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 외 억류자들은 유엔 북한인권보고서와 인권 단체들의 ‘석방 호소’를 통해 김원호·박정호씨라는 이름과 억류 정황 정도만 알려져 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은 2017년 5월 취재차 북·중 접경지에 갔다가 연락이 두절된 북한 전문 매체의 탈북민 출신 함진우 기자도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탈북자 3명이 북한에 억류됐다’는 정부 발표와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통일부, 억류자 현황 일시 삭제

역대 정부는 그간 통일부 대변인 성명이나 유엔 메커니즘 등을 이용해 억류자 송환을 촉구해 왔다. 통일부는 이날 “남북 간 대화가 이뤄진 시기에는 여러 차례 북측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며 “앞으로도 다각적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문 전 대통령은 판문점 정상회담과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억류자 석방을 강하게 요구했다”며 “석방 직전까지 이르게 됐다. 김 위원장은 문 전 대통령에게 ‘최선을 다하겠다. 좋은 소식을 들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다만 김정욱 선교사의 형인 김정삼씨는 4일 본지 통화에서 “당시 정부로부터 ‘기다려달라’는 말 이외의 별다른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인 지난 9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씨를 비롯한 억류자 가족들과 면담했다. 김씨는 “통일부 장관이 억류자 가족들과 만났는데도 대통령이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한 걸 보면 국무회의에서 논의가 안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 대통령 발언이 논란이 된 후인 4일 홈페이지의 ‘억류자 현황’을 일시 삭제했다가 복구했다. 3일 오후 통일부 홈페이지의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항목에서는 각각의 현황을 볼 수 있었지만, 4일 오후에는 억류자 현황만 사라졌다. 배경을 묻는 본지 질의에 통일부는 “홈페이지 담당자가 조직 개편 내용을 반영하던 중 벌어진 실수였다”고 했다. 4일 저녁 억류자 현황은 복원됐다.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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