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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알제리선 禁書 된 소설로 佛 최고 문학상 “독재자는 망각을 원해도 작가는 기억한다”

조선일보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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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알제리선 禁書 된 소설로 佛 최고 문학상 “독재자는 망각을 원해도 작가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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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내전 다룬 ‘후리’ 쓴 카멜 다우드
신변 위협 때문에 2년 전부터 파리 거주
국내 문학 심포지엄 참가 위해 방한
카멜 다우드는 “이 책과 함께 나는 도마 위에 올랐다”며 “정부가 숨기려고 한 알제리의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했다./민음사

카멜 다우드는 “이 책과 함께 나는 도마 위에 올랐다”며 “정부가 숨기려고 한 알제리의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했다./민음사


“사람들이 원한 것은 망각이 아닙니다. 가장 끔찍한 죽음은 기억에서 잊히는 것입니다.”

장편소설 ‘후리(Houris)’로 작년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은 알제리 출신 소설가 카멜 다우드(50)가 3일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 그는 4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했다. 알제리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뉴욕타임스’ ‘르몽드’ 등에 기고한 칼럼니스트다. 아랍어가 모국어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그는 “작가는 나를 꿈꾸게 하는 언어로 글을 쓰기 마련”이라고 했다.

‘후리’는 알제리에서 헌법으로 언급이 금지된 알제리 내전(1991~2002)을 다룬다. 이른바 ‘검은 내전’으로 불리는 시기다. 세속화된 군부와 이슬람 세력이 충돌하며 민간인 수십만 명이 학살당한 알제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그러나 내전이 끝난 2005년 알제리 정부는 ‘국가 평화와 화해를 위한 헌장’을 통과시켰다. 내전 관계자들을 대거 사면하는 동시에 해당 사건을 공적 영역에서 언급하는 것 자체를 법으로 금지했다.

이에 ‘후리’는 알제리에서 금서로 지정됐고, 알제리 정부는 그에게 국제 체포 영장을 두 번이나 발부했다. 다우드는 신변 위협 때문에 2년 전부터 프랑스 파리에 거주한다. “알제리 비밀 경찰이 막 감옥에서 풀려난 제 지인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 왔습니다. ‘파리에 있더라도 우리는 너를 찾을 수 있어.’” 그럼에도 그는 꼿꼿했다.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 아무도 그 정권에 조력했던 경찰관의 이름을 기억하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은 기억하지요.”

장편소설 '후리'로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은 카멜 다우드. /민음사

장편소설 '후리'로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은 카멜 다우드. /민음사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오브’는 1999년 12월 31일부터 2000년 1월 1일까지 벌어진 하드 셰칼라 마을 대학살의 생존자다. 일가족이 몰살당했으나 오브는 후두와 성대가 손상된 채 혼자 살아남는다.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오브가 ‘후리’라고 이름 지은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알제리 역사를 말할 수 없는 현실을 빗댄 서사적 장치다.

다우드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의, 용서, 책임, 기억”이라며 “나는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 글의 소재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주제를 피하거나 제약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내전을 겪은 알제리인으로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고통 이후에, 죽음 이후에도 삶은 존재하고 이어집니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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