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혁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
일본은 1990년대까지 수출과 제조업 중심의 경상수지 흑자로 엔화 강세를 누렸다. 2000년대 들어 경상수지의 중심축이 무역수지(상품·서비스 수지)에서 본원소득수지(해외 투자로 발생하는 배당·이자 수익 등)로 이동했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 직접투자(FDI)와 증권투자에 대거 투입하며 ‘수출 강국’에서 ‘자산 부국’으로 전환한 것이다.
성장이 정체된 일본을 떠나 생산성과 수익률이 높은 해외로 자본이 이동해 엔화의 구조적 약세를 불러왔고, 국내 제조업 경쟁력과 자본시장 투자 기반은 점차 약화됐다. 이후 일본은 무역수지 적자를 본원소득수지 흑자로 상쇄하는 경상수지 구조를 갖게 됐다.
한국도 비슷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외화 중 해외 직접투자와 증권투자로 빠져나가는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국제수지통계에 따르면, 이 비중은 2023년 65%에서 2025년(1~9월) 98%까지 급증했다. 대규모 해외 투자는 원화 약세의 주요 요인이며, 그 중심에는 국민연금과 개인 투자자의 미국 주식 매수가 자리 잡고 있다.
해외 투자가 늘면서 한국은 2014년부터 순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부채) 흑자국이 됐다. 2024년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순대외금융자산 비율은 55%에 달한다. 일본이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던 2009년 이후 현재 83%까지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역시 유사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본격적인 해외 자산 축적기에 들어섰다. 최근 원화 움직임과 일본 사례에서 보듯 순대외금융자산의 증가는 지속적인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해외 자산이 본국으로 회귀해 자국 통화의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순대외금융자산국에서 급격한 자본 유출(대외금융부채 감소)이 발생하면 뒤이어 급격한 자본 유입(대외금융자산 감소)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원화는 중장기적으로 이전보다 저평가된 수준에서, 변동성은 과거보다 낮아지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부유하지만 약한 통화, 그 불편한 균형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정혁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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