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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의 런던 Eye] [13] 교양을 과시할 때 쓰는 말

조선일보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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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의 런던 Eye] [13] 교양을 과시할 때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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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서 처음 맡았던 일 중 하나는 한국 기업인들의 연설문 영문본을 감수하는 작업이었다. 대개의 연설문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네 글자’로 된 문구가 종종 있었다. 그것들의 자연스러운 영어 표현을 찾고자 쩔쩔매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내 한국어 실력이 향상되고 나서야 그것들이 사자성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자성어를 영어로 옮길 때는 원래 의미를 최대한 살려보려 애썼다. 이를테면 ‘초지일관’을 번역할 때 ‘처음 세운 뜻을 끝까지 지킨다’는 뜻을 살려 ‘stick to the plan’이라고 했다. 모든 한국인이 사자성어에 통달한 것은 아니다. 사자성어를 잘 아는 것은 지식인임을 드러내는 장치처럼 여겨진다. 이런 이유로 기업인과 정치인들은 사자성어를 사용하고 싶어 한다.

영국인도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어 문구를 사자성어처럼 사용한다. 색슨족과 바이킹에게 영향을 받아 독일어와 스칸디나비아어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영어는 실용적인 언어였지만 듣기에 다소 거칠고 서정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10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를 통치하던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을 침공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건너온 윌리엄은 휘하의 장군들에게 넓은 토지를 하사했다. 이로 인해 영국에는 프랑스어를 하는 지배 계급이 빠르게 부상하게 되고, 프랑스어는 지배 계급의 언어로 자리 잡게 된다.

노르만들은 오래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자취는 여전히 영어에 남아 있다. 교양 있는 상류층처럼 보이려는 영국인들은 ‘the more things change, the more they stay the same(변화가 많아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대신 ‘plus ça change, plus c’est la même chose’와 같은 프랑스 문구를 사용한다. 물론 어떤 프랑스 단어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어서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한국인들과 사자성어의 관계처럼 영국인들이 실제보다 교양 있어 보이려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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