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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총리 다카이치의 고육책? 남편 성 따르되 결혼전 姓 병기 허용

조선일보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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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총리 다카이치의 고육책? 남편 성 따르되 결혼전 姓 병기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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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통인 부부 동성제 지키면서 성씨 변경 따른 불편은 개선키로
일본에서 앞으로 한 사람의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에 이름 2개를 표기한 사례가 등장할 전망이다. 일본 여성 대부분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姓)을 따르는데, 앞으로는 결혼 전의 성도 병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르면 내년 1월 국회에 이런 내용의 법률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부부 동성(同姓)제’를 유지하는 대신, 결혼으로 성이 바뀌어도 옛 성을 불편 없이 쓸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다. 이름 변경 때문에 은행 업무나 해외 여행 등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각종 증명서에 이름을 병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언뜻 일본 첫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가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대에 가깝다. 법률안의 취지는 ‘불편을 최대한 개선할 테니 부부가 같은 성을 쓰는 전통을 지키자’는 것으로, 일본 가부장제의 상징인 부부 동성제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를 비롯한 자민당 보수 강경파 의원들은 “일본의 전통 가족 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현재 일본에선 ‘하나의 호적에는 하나의 성씨만 둔다’는 원칙에 따라 결혼과 동시에 남편과 아내 중 한 명이 반드시 성씨를 바꿔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의 남편 야마모토 다쿠는 법적 이름을 ‘다카이치 다쿠’로 바꿨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전체 부부의 약 95%는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른다. 성이 바뀐 여성은 이를 주변에 일일이 알리고, 각종 증명서를 갱신하고 때론 은행 계좌도 다시 개설해야 한다. 이혼할 경우 다시 옛 성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변에 이혼 사실을 ‘공표’하게 되는 난처함도 있다.

이런 불편 때문에 야당은 물론이고 집권 자민당 일부 의원들도 부부 동성제를 ‘선택적 부부 별성(別姓)’으로 바꾸는 방안을 지지했다. 남편의 성을 따를지, 원래 성씨를 유지할지 여성에게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부부 별성제를 지지하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의 아내인 인기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은 결혼 후에도 같은 이름으로 활동 중이지만, 법적 성명은 ‘고이즈미 마사미’로 알려졌다. 고이즈미는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와 경쟁했던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부부 별성제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가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였던 1898년 민법 개정 때 부부 동성제를 채택했다. 그 전엔 한국처럼 부부가 각자 성씨를 유지했지만 서양의 풍습을 따라 법을 바꾼 것이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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