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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전시로 되돌아본 '억압 속에서 빛난' 민주주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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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전시로 되돌아본 '억압 속에서 빛난' 민주주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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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관 '빛의 연대기' '잘린 문장 열린 광장'
계엄 반대 집회를 민주화운동 역사와 연결한 작품 전시
서울시립사진미술관 특별전도 사회비판적 작품 소개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전시된 김화순의 '누구도 뜨는 해를 막을 수는 없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전시된 김화순의 '누구도 뜨는 해를 막을 수는 없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년 전 한밤중 벌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불법계엄은 한순간에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지만, 그 '계엄의 밤'부터 시민들은 줄기차게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며 민주화운동 연대기에 새로운 장을 추가했다. 계엄 사태 1년을 맞아 미술계에서도 불의와 억압에 항거해온 우리의 저력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여럿 열려 계엄 극복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은 3일 현대미술 작가 26명의 기획전 '빛의 연대기'를 열었다. 회화 판화 영상 설치작품 60여 점을 통해 동학농민운동과 항일독립운동부터 4·19 5·18 6·10 항쟁을 거쳐 12·3 계엄 반대 집회까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주요 장면을 '빛'이라는 코드로 재구성했다. '빛의 혁명'으로 불리는 계엄 반대 운동을 저 유구한 역사의 연장선상에 올리는 의미가 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독재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빛'은 해방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져 왔다"면서 "12·3 계엄령 1년을 맞아 민주주의를 쟁취한 시민 저항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를 하려 했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전시된 조용상의 '2024.12.3. 청년과 시민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전시된 조용상의 '2024.12.3. 청년과 시민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소개된 이오연의 '키세스 시위단Ⅱ'.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소개된 이오연의 '키세스 시위단Ⅱ'.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전시장엔 신학철 오윤 홍성담 등 과거 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민중미술 작가들 작품과 계엄 반대 운동의 상징적 면면을 회화로 풀어낸 2025년 신작이 어우러진다. 계엄 반대 상징으로 떠오른 응원봉과 은박 외투가 김봉준 김화순 박영균 등 여러 작가의 회화·영상 작품에 등장한다. 조용상의 수묵화는 계엄 당일 움직이는 장갑차를 막은 시민을, 이오연의 아크릴화는 대통령 관저 앞에서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밤새 버틴 일명 '키세스 시위대'를 그렸다.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전시된 박경훈의 목판화 '동학, 일백삼십년만에 남태령을 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전시된 박경훈의 목판화 '동학, 일백삼십년만에 남태령을 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박경훈의 목판화 '동학, 일백삼십년만에 남태령을 넘다'는 과거와 현재의 민주화운동을 잇는다는 전시의 주제의식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남태령에서 가로막힌 '전봉준투쟁단' 행렬에 과거 의병단과 현재 응원봉 시위대가 함께 어울린 것으로 묘사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잘린 문장 열린 광장'에 전시된 성능경의 퍼포먼스 사진 '신문 읽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잘린 문장 열린 광장'에 전시된 성능경의 퍼포먼스 사진 '신문 읽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잘린 문장 열린 광장'에 전시된 심승욱의 '지난 시간 속에 남겨진 다섯 개의 군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잘린 문장 열린 광장'에 전시된 심승욱의 '지난 시간 속에 남겨진 다섯 개의 군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잘린 문장 열린 광장'에 전시된 정정엽의 '광장 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잘린 문장 열린 광장'에 전시된 정정엽의 '광장 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같은 전시장에서 전날 문을 연 특별전 '잘린 문장 열린 광장'은 1970, 80년대에 이어진 반(反)독재 언론 투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유신 체제와 신군부 치하 정권의 언론 탄압 실상과 이에 저항한 언론인 활동을 보여주는 사료를 한자리에 모았다. 저 엄혹한 시절은 그 못잖은 언론 통제와 검열을 예고했던 지난해 계엄령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전시에도 현대미술 작가들이 언론 탄압을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다. 성능경의 퍼포먼스 '신문 읽기'는 신문에서 기사를 잘라내는 행위로 과거 언론이 처했던 '강요된 침묵'을 묘사했다. 조각가 심승욱은 검은 비닐을 뒤집어 쓴 군상으로 억압적 현실을 버티는 인물을 묘사했다. 수많은 콩알·팥알 형태의 반복으로 화폭을 뒤덮은 정정엽 회화 '광장'에서 광화문집회 인파의 불빛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빛의 연대기'는 내년 1월 16일, '잘린 문장 열린 광장'은 3월 29일까지다.

정동석의 '서울에서'는 국정홍보판 사진을 통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국가의 억압을 은유한 사진이다. 당시는 검열로 전시되지 못해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정동석의 '서울에서'는 국정홍보판 사진을 통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국가의 억압을 은유한 사진이다. 당시는 검열로 전시되지 못해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민주화운동을 되짚는 작품들은 서울 도봉구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의 특별전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도 볼 수 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제작된 국내 현대미술 작가 36명의 사진 또는 사진 활용 작업 20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로, 매체에 대한 전위적 실험과 사회비판적 관점이 묻어난다.

정동석의 미발표작 '서울에서'는 1982년 광화문 인근 텅 빈 국정홍보판 사진을 여러 장으로 나눠 찍으면서, '전라남도' 홍보판을 찍은 사진만 앞으로 경찰이 지나가는 모습을 포착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은유했다. 이 작품은 당시 검열 때문에 도록으로만 남아 있다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한희진 서울시립사진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당시 작가들은 사진을 작품 소재로 활용한 해외 미술사조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되,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반영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