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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급 쌀’ 농사꾼이 2억원으로 ‘100만 관객 영화’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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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급 쌀’ 농사꾼이 2억원으로 ‘100만 관객 영화’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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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영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제작비 2억3천만원. 전체 스태프 10명, 그중 전문 영화인은 감독과 동시녹음 기사 단 2명. 아마추어 스태프·배우들과 여섯달간 짬짬이 찍은 영화가 지난해 일본 극장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8월 도쿄에서 단관 개봉 뒤 입소문을 타고 전국 380개관으로 확대 개봉하며 100만 관객을 동원한 ‘사무라이 타임슬리퍼’다. 막부 시대에 벼락을 맞고 현대의 시대극 촬영장으로 떨어진 하급 사무라이의 좌충우돌을 그려 웃음과 감동을 안겼고,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 등 주요 영화상까지 휩쓸었다.



현직 농부라는 독특한 이력의 야스다 준이치(58) 감독이 영화를 들고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았다. 지난 2일 영화제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씨지브이(CGV) 압구정에서 만난 야스다 감독은 “한국 관객들 반응이 어떨지 조마조마했는데, 일본 관객과 같은 장면에서 웃는 걸 보며 기뻐서 눈물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영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를 연출한 야스다 준이치 감독.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영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를 연출한 야스다 준이치 감독.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40대 후반 첫 장편 영화를 만든 그는 이번 영화가 세번째 연출작이다. 대학 시절부터 유치원 재롱잔치, 결혼식, 엔카 가수 동영상 등 외주 촬영 일을 오래 하면서 독학으로 영상을 공부했다. “의뢰받은 작품을 손님이 보고 기뻐하는 것도 보람 있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어 전문가들에게 평가받고 싶었다”는 그가 마침 모아놓은 돈으로 만든 데뷔작이 ‘권총과 계란프라이’(2014)였다. 투자자 없이 적은 예산으로 완성한 ‘자주영화’지만, 대중성을 추구해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예산 영화가 흔히 그렇듯 일주일 만에 스크린에서 내려왔고, 제작비 700만엔 중 500만엔의 적자를 봤다.



자주영화를 만들면서도 흥행에 성공할 방법을 고민하던 그가 벤치마킹한 게 제작비 300만엔으로 1천배인 30억엔의 수익을 올린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2017)였다. “100년에 한편 나올까 말까 한 성공이라지만, 나라고 못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개봉·마케팅 방식을 연구했어요.” ‘카메라를…’이 단관 개봉했던 도쿄 이케부쿠로의 작은 극장 시네마로사에서 ‘사무라이 타임슬리퍼’를 단관 개봉한 이유다.



영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영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시네마로사는 ‘영화가 재밌어서 우리 말고 큰 극장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제 판단을 바꾸지 않았어요. 극장은 작아도 영화를 좋아하는 단골 관객들이 있으니 작품이 좋다면 마케팅비를 들이지 않고도 입소문이 날 거라 생각했죠.” 계산이 적중해 개봉 한달 만에 상영관이 전국 단위로 확대됐다. 시네마로사는 이 영화를 무려 1년간 상영했다.



그가 영화로 그리는 캐릭터는 40대 신문배달부, 벼를 키우고 밥을 하는 여자, ‘죽는 역할’에 성심을 다하는 단역 연기자 등 세상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는 인물들이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의 성공 뒤 메이저 스튜디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평범하면서 진심 가득한 인물을 그려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제 바빠서 농사는 못 짓겠다”고 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쌀농사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가업이고 영화만큼이나 사명감을 느끼는 터라 앞으로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예요. 마침 지난주에 제가 생산한 쌀이 1등급 판정을 받아서 영화의 성공 못지않게 기뻤답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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