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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사람들’ 하정우 “19禁 농담이 전부는 아니다” [인터뷰]

헤럴드경제 손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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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사람들’ 하정우 “19禁 농담이 전부는 아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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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개봉 ‘윗집 사람들’ 감독·각본·배우
‘뜨거운’ 윗집 vs ‘차가운’ 아랫집 소동
“파격적 소재는 반드시 필요한 선택”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감독 하정우가 네 번째 연출작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3일 개봉한 공효진, 김동욱, 이하늬, 그리고 하정우 주연의 ‘윗집 사람들’이다.

영화는 ‘19금(禁)’도 부족하다는 입소문이 벌써 자자하다. 감독 겸 각본가 겸 배우의 각오도 시작부터 남달랐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것이 시작할 때의 마음이었죠.” 부부의 성생활, 부부간 스와핑 등 파격적 소재로 관객들을 예고 없이 놀라게 하는 이 영화는, 그 덕분에 노출 하나 없이 ‘섹스 코미디’란 타이틀을 얻었다.

“저는 이 영화가 그냥 섹스 코미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난 2일 개봉을 하루 앞두고 만난 하정우는 “(스와핑 소재의 사용은) 연출자로서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개봉하면 (관객들의 반응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해명이라기보다 ‘작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작품 스스로가 해결해 줄 것’이란 믿음에 가깝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스페인 영화 ‘센티멘탈’을 원작으로 한 ‘윗집 사람들’은 아랫집과 윗집 두 쌍의 부부가 펼치는 하룻밤 소동을 그린 영화다. 아랫집이란 한정된 공간을 무대 삼아, 네 명의 배우가 치열하게 대사만으로 극을 이끈다. 매일 밤 윗집에서 들리는 ‘활기찬’ 층간 소음에 지친 아랫집 부부 정아(공효진 분)와 현수(김동욱 분). 이들은 위층 부부 수경(이하늬 분)과 김선생(하정우 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마주 앉은 두 부부는 예기치 못하게 흘러가는 대화 속에 서로 솔직한 사생활들을 식탁 위에 올린다. 숨김없고 열정적인 윗집 부부 앞에서, 무미건조하게만 지내왔던 아랫집 부부가 애써 외면해 온 관계의 균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윗집 부부의 스와핑 제안에 그간 애써 감춰 온 정아의 진심이 쏟아져 나오고, ‘더 이상 못 할 말도 없는’ 대화가 이어지며 아랫집 부부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렇듯 19금 코미디의 탈을 쓴 영화는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스와핑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한때 뜨거웠던 감정을 잊고 사는 미지근한 두 남녀의 이야기이자, ‘관계(relationship)’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 하정우가 숨겨둔 반전이자 비장의 카드는 이처럼 영화가 갖고 있는 드라마다.

“원작을 보고 나서 그 울림의 파장이 컸어요.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작품이었죠. 원작은 좀 담백하고 소소한데, 거기에 저만의 것을 더하면 재밌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그저 야한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오실 텐데, 저만의 숨겨진 비장의 카드는 바로 영화의 드라마에요. ‘관계 회복’에 대한 예상치도 못한 그런 반전이 영화에 숨겨져 있는 관람 포인트가 아닐까 싶어요.”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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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이끄는 것은 아랫집 정아의 감정선이다. 러닝타임 107분은 오랜 시간 외로움, 공허함과 한 몸처럼 지내왔던 정아가, 윗집과의 식사를 통해 무관심했던 남편 현수와의 관계를 솔직하고 냉정하게 바라보기까지의 여정이다. 남편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원작과는 전혀 다른 지점이다.


“여성의 눈으로 관계를 봐야 재미있겠다는 생각했어요. 고민 없이 공효진 배우가 정아 역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효진 배우는 잘 정돈되지 않은 야생적인 화술을 갖고 있어서, 연기가 극사실적이란 느낌을 주거든요. 윗집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을 때 당황하면서도 배려하며 맞춰주는 정아와, 그것을 방어하려는 현수 커플의 현실적인 리액션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해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말의 틈조차 주지 않는 밀도 높은 대사에 지배당한다. 네 명의 배우들은 러닝타임 내내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대사를 주고받으며 앞을 향해 내달린다. 치밀하게 계산한 대사 안에는, 마찬가지로 정교하게 설계된 웃음들이 있다. 실제 코미디언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는 ‘말맛’ 넘치는 대사는 꽤 높은 타율로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하나의 대사도 허투루 소비되지 않는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리딩 배우를 섭외해 그들과 함께 리딩하면서 대본을 계속 수정했죠. 코미디언분들에게 시나리도 감수를 부탁하기도 했어요. 제가 한 대사 중에 ‘매일 아침 ‘우뚝’ 서 계셨잖아요’에서 ‘우뚝’이란 대사도 개그우먼 엄지윤 님이 만든 거예요. ‘풍수가 지려서 풍수지리’와 같은 고전적인 아재 개그도 넣고요. 영화 속 대사가 끝까지 문학 작품 속 대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모았던 것 같아요.”


정작 촬영 현장에서는 웃을 일이 많지 않았다. 모든 배우가 거의 모든 신과 회차에 출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막대한 대사량을 이겨내며, 고군분투해야 했기 때문이다. 촬영은 극한의 집중력 속에 진행됐다. 심지어 배우 이하늬는 결과물을 보고 난 후에야 영화가 코미디인 것을 알아챘다는 후문이다.

하정우는 “대사량이 어마어마 했다. 뭔가 웃고 긴장이 풀리고 그런 틈이 하나도 없었다”면서 “숨도 못 쉬고 눈도 못 감은 채 소화해야 하는 장면들이라, 짧은 시간 내에 집중력을 쏟아야 했다”고 돌아봤다.

사실 대사의 소재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소재를 어설프게 다루지 않으려고 제작 전 연출부가 다양한 성적 취향을 다루는 커뮤니티에 잠입 취재도 했다. 하정우는 “소재는 아랫집을 보여주기 위한 윗집 사람들의 설정이지, 그것이 주가 아니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오히려 표현의 수위를 세게 하면 아랫집의 리액션이 재미있어지니 (투자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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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앞선 세 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많은 캐릭터를 통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했다”고 했다. 하지만 캐릭터 4인만 등장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이 변했다. 하정우는 “그간 내가 너무 욕심이 과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영화 ‘윗집 사람들’은 감독 하정우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물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고민은 오늘도 현재 진행 중이다.

“욕심을 많이 부리지 말자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이번 ‘윗집 사람들’은 의미가 있어요. 지금까지 많이 보여주면서 연출자로서 증명하는 데 조급했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올 한 해 ‘브로큰’부터 ‘로비’, 그리고 ‘윗집 사람들’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던 1년이었네요. 올해를 열심히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