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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 흥행은 옛말… 다양성 영화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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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 흥행은 옛말… 다양성 영화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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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딸' '얼굴' '세계의 주인' 흥행
장르물에 대한 흥미·신뢰도 하락… 원인은 반복되는 공식
"다양한 영화 제작에 대한 시도 이어져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웬만한 타격감에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자극에 자극을 더해 고자극 시대에 도래한 지금, 관객들은 반대로 자극을 덜어낸 인간적인 이야기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5년 영화시장은 다양성 영화에 대한 주목도가 높았다. 장르의 공식에서 벗어난 낯선 이야기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작품이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거대 권력과 선·악의 대립, 사건 중심의 화려한 미장센보다 일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깊이 있게 다루는 영화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 가운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좀비딸'은 좀비물에 가족 드라마를 결합해 호평을 받았다. 기존 좀비물과 달리 생존을 위한 인간의 사투보다 딸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에 초점을 맞췄다. 좀비라는 소재가 주는 장르적 쾌감과 휴머니즘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저예산 영화로 흥행에 성공한 연상호 감독의 '얼굴'은 2억 원 제작비로 110억 원의 수익을 냈다. 사건, 메시지, 캐릭터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영화적 기교를 덜어낸 작품이다. 장면 전환보다 화자의 감정에 따라 러닝타임이 흐르는 방식이 신선하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독립영화의 약진도 주목할 성과였다. '세계의 주인'은 적은 상영관 수에도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10대 소녀가 그리는 관계와 주체성이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다.

범죄·액션·스릴러의 반복된 공식, 관객의 외면 야기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범죄·스릴러 장르에 편중돼 있다. 2010년대 흥행에 성공한 작품 대부분이 장르물이었다. '베테랑' '범죄도시'는 믿고 보는 프랜차이즈가 됐고 '도둑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부산행' '신과 함께' 시리즈 등은 N차 관람 열풍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신선했다. 그러나 비슷한 공식을 반복하면서 관객들은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선악의 치열한 싸움, 남성 중심의 서사, 적절히 배치된 유머, 화려한 액션 등이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굳어지면서 타이틀만 봐도 영화의 전개가 짐작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케일은 크지만 알맹이가 부족한 작품들이 연이어 개봉된 것도 문제다. 해외 로케이션, 강렬한 비주얼, 유명 감독과 배우의 조합 같은 화려한 마케팅 포인트를 내세웠지만 높은 기대감을 뒷받침할 힘이 부족해 혹평 속 조용히 퇴장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관객은 장르적 쾌감만을 원하지 않는다. 방대한 콘텐츠 시장 속에서 관객들은 잘 만든 작품을 스스로 선별한다. 눈과 귀만 즐거운 영화만으로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오기 어렵다. 극장은 거대한 규모의 영화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을 찾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케팅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은 입소문의 시대다. SNS에 올라오는 실관람객의 생생한 후기가 예비 관객을 움직인다. '세계의 주인' '사람과 고기'는 입소문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상영관 확대를 요구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실제로 상영관 수 증대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난 몇 년간 극장가는 거대한 자본을 들인 대작이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는 관객의 선택을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며 "획일성을 극복하고 다양한 중형급 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기회가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주 기자 yeonju.kim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