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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헌금에 생활고"…아베 총격이 불러온 日 '통일교 해산명령'

중앙일보 김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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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헌금에 생활고"…아베 총격이 불러온 日 '통일교 해산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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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쐈다.”

2일 오후 일본 나라(奈良)지방법원.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날 12번째 열린 공판에 죄수복을 입고 참석한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45)가 검찰 심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기 시작했다. 그는 2022년 7월 8일 당시 자민당 후보 선거 유세를 지원하기 위해 나라시를 찾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에게 총구를 겨눴다. 약 1억엔(약 9억5000만원)이 넘는 돈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하 가정연합)에 모친이 헌금하면서 생활고를 겪게 된 야마가미의 계획범죄였다.

2022년 7월 나라시 거리 유세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총격 테러를 가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현장에서 체포되고 있다. 교도·AP=연합뉴스

2022년 7월 나라시 거리 유세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총격 테러를 가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현장에서 체포되고 있다. 교도·AP=연합뉴스


야마가미는 이날 공판에서 범죄 사실을 인정하며 아베 전 총리의 비디오 영상 이야기를 꺼냈다. 아베 전 총리가 과거 가정연합에 보낸 비디오 메시지에 대한 것으로 그는 “당황했다고 해야 할까, 실망스럽다고 해야 할까. 강한 분노는 아니었지만 머리 한구석에 계속 남아있었다”고 털어놨다. “혐오감이라고 할까 적의가 조금씩 강해져 갈 때의 일이었다”는 말도 보탰다. 종교에 대한 혐오가 아베 전 총리 테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일본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아베 전 총리가 총격으로 2022년 사망하면서 일본 사회는 요동쳤다. 당시 가정연합과 집권당인 자민당 의원들 간의 유착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불똥은 일본 정계로 튀었다. 불과 두 달 만에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에서 각료 4명이 가정연합 행사 참석 등 유착 의혹과 정치자금 문제로 낙마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정권 지지율 마저 하락세를 이어가자 피습 사건 석 달 만에 기시다 총리는 문부과학성을 앞세워 이례적인 조사에 나섰다. 종교 단체 해산을 염두에 둔 ‘질문권’ 행사였다.

2022년 7월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일본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2년 7월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일본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종교 단체에 대한 해산 명령”을 언급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는 다르게 일본에서 절차가 진행 중인 가정연합 해산은 정치 활동이 아닌 ‘고액 헌금’ 등 위법 행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일본 종교법인법 81조에 따르면 ‘법을 위반해 종교 단체가 공공복지를 현저히 해친다고 명백히 인정되는 행위를 했을 경우’ 법원이 해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의 종교 단체 해산의 역사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 테러를 일으키자 일본 정부는 이듬해 종교법인법을 개정해 정부가 직접 질문권을 행사하는 형태로 종교 단체의 운영실태 등을 조사할 수 있도록 했고 이를 근거로 옴진리교는 해산했다. 이어 종교단체인 메이가쿠지가 2002년 사기 사건으로 사회 문제가 되자 일본은 두 번째 종교 단체 해산을 단행한다. 가정연합에 대한 해산 명령이 가시화한 것은 아베 피습 1년 만인 2023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문부과학성은 법원에 가정연합에 대한 해산명령을 청구했고,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올 3월 해산명령을 내렸다. 가정연합은 즉시 항고해 도쿄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최근 열린 비공개 심리에서 가정연합 측은 위법한 고액 헌금 등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컴플라이언스 선언(2009년)’을 근거로 문부과학성의 해산 청구는 부당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고법에서도 해산 명령이 유지될 경우 가정연합은 헌금 피해 보상과 청산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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