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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앞두고 뒷담화는 금물… 부정적인 것과 이젠 작별하자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6)

조선일보 고혜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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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앞두고 뒷담화는 금물… 부정적인 것과 이젠 작별하자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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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은 그동안 쌓인 부정적인 것과 작별하고, 서로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기다. /게티이미지뱅크

연말은 그동안 쌓인 부정적인 것과 작별하고, 서로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기다. /게티이미지뱅크


또 한 해 막바지, ‘만남의 때’가 왔다.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여기저기서 송년회를 마련한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출발하려는 의지의 발로다. 특히 나이가 들면 그 아쉬움이 커지니 송년 모임도 많아지게 마련. “세상에! 내게 이런 장점이 있다고?” 한 송년회에서 나온 감탄사다. ‘관계 개선용 놀이’도 곁들였다며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의 장점을 20가지나 써보란다. 다들 머리를 싸매며 부지런히 쓴다. 궁금하고 겁도 났다. 그동안 가끔 만나 온 상대가 건네주는 답안지에 다들 놀라는 표정이다. “당신에게 이런 장점이 있다”는 칭찬에 무안해한다. 집에 돌아와 그 답안지를 서랍에 넣고 슬쩍슬쩍 꺼내 보면서 자세를 바로잡으니 그 모임의 의도가 성공한 거다. “뭐 그런 것씩이나 하냐” 했는데 열거된 장점에 맞게 행동하려 들더라. 새삼, 사람 마음과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11월 중순부터 학교 동창회, 직장 사우회 모임부터 작은 모임까지 줄을 잇는다. 자연스레 지인들과 맺은 관계와 추억을 복기한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게 인간관계라고 흔히 말한다. 사람 속마음을 헤아릴 수 없고 때론 이유 모르게 토라져 ‘관계의 유통기한’이 다 됐음을 알게 하니까. 관계는 난해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제, 그 일거수일투족의 의미가 대충 읽히지만. 그러나 그런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고 생각과 행동을 짜 맞추는 일은 여전히 난제다. 그래도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모든 이가 제 생김·됨됨이와 무관하게 존중받기 원하는 생명이라는 것. 한마디로 제 잘난 맛에 산다. 그것이 이 무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자생력이리라. 만물을 뛰어넘는 영장(靈長), 인간의 영특한 뇌는 생존의 무기이자 고뇌의 본산이다. 저마다 고단한 영혼을 위무해 주는 ‘내 편’인 사람들이 그립다. 일부는 관계 지속을 위해서 적당한 이중성과 의도적 찬사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든 ‘솔직한 게 최고’라며 상대 행위를 지적, 분노를 퍼붓는다면 세상이 연일 시끄럽고 불편해질 테니까. 제풀에 분노를 쏟아냈다면 상대방 심정은 어땠을까. 여럿이 보는 자리에서 당하는 경우라면.

눈·코·입 세 가지만으로 80억 지구촌 인구가 제각각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무형의 마음가짐은 아마 그 변수가 수백억 가지는 되리라.

더구나 이런 시구(詩句) “사람이 내게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의 ‘방문객’에서)도 떠올라 마음가짐을 고쳐먹게 된다. 2500여 년 전 인생 선배도 논어에서 “사람을 얻는 자가 세상을 얻는다”고 설파했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역시 “사람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면서 진정한 관계는 ‘이용’이 아닌 ‘존중’에서 생긴다고 뼈저린 경험을 토로하지 않았던가. 또 인생을 잘 살아내는 고수와 고전하는 하수(下手)의 상이점은 ‘전 인생을 걸고’ 달려온 상대에게 ‘뭘 해줄까?’와 ‘뭘 해 달랠까?’의 차이에서 구분된다니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한 예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모임이 저절로 굴러가는 양 ‘무임승차’하지 말고 봉사든 물질이든 제 몫은 해야 하는 거다. 게다가 하수가 되는 지름길은 상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습관인 양 뒷담화하는 일. 그 험담, 하루 만에 돌고 돌아 상대를 ‘원수’로 만든다. 자신도 잘 모르면서 과연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제대로 아는가. “남에 대한 비판은 위장된 찬사를 보내는 일”이란 말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상대를 질투하거나 그가 선망 대상이었음을 폭로하는 일”(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이라니 ‘뒷담화 선수’들은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올해로 끝낼 일이다.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의 나이, 부정적인 것들과는 작별하자. 제아무리 AI니, 디지털 시대니 해도 그 중심에 사람과 사람의 훈훈한 관계가 없으면 말짱 헛거다. 한 해가 저무는 이때, 만남에서 건네는 칭찬과 격려, 자신을 더 곱게 만드는 파동으로 곧 되돌아온단다. 어쩌다 만난 인연, 이제 필연으로 굳혀볼 절호의 기회다.

[고혜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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