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시절부터 탄탄하게 자리 잡으며 믿고 보는 배우로 사랑받고 있는 배우 김유정은 ‘친애하는 X’를 통해 이전의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냈다. 소시오패스 주인공 백아진을 연기하며 작품 흥행을 이끌고 있는 그는 “저희가 준비한 만큼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며 소감을 밝혔다. 사진 제공=티빙 |
배우 김유정은 아역 시절부터 22년 넘는 세월 동안 쉴 새 없이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국민 여동생’으로 불릴 만큼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배우로 꼽히지만 이번에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지난 6일 첫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는 국내외에서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는 중이다. 미국 내 OTT 플랫폼 비키(Viki), 일본 디즈니+,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OTT 플랫폼 스타즈플레이,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HBO맥스 등 잇따라 정상을 차지하며 글로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지옥에서 벗어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면을 쓴 여자 백아진(김유정)이 표적을 정한 후 이를 밟고 올라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김유정이 연기한 주인공 백아진은 표면적으로는 아름답고 성공한 톱스타지만 내면에는 욕망과 광기, 냉철한 통제력과 치밀한 계산을 숨긴 복합적인 악녀다.
공허와 광기를 오가는 감정선을 생생하게 구현한 김유정은 기존의 맑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전혀 다른 새로운 얼굴을 시청자에게 각인시켰다. ‘해를 품은 달’(MBC) 등 아역 시절은 물론이고 첫 주연을 맡은 ‘구르미 그린 달빛’(KBS2)부터 ‘편의점 샛별이’(SBS)·‘마이 데몬’(SBS) 등 출연한 작품마다 믿고 보는 연기력을 보여줬지만 이번 만큼은 “연기가 미쳤다”는 반응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그간의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과감히 지워내고 아역 시절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연기 내공을 폭발했다.
작품 방영 중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김유정은 쏟아지는 호평에 대해 “실감은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기분이 참 좋다. 감사한 마음이고 저희가 준비한 만큼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며 “특히 백아진이 실제로 튀어나온 것 같다는 평을 받았을 때 제일 기분이 좋았다. 원작 자체가 인기가 있던 작품이라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원작 팬들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서 좋다”고 미소 지었다.
어릴 적 가정폭력을 당해 불우한 생활을 보내던 백아진은 누구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게끔 톱배우로 비상하기 위해 주변인을 하나둘 이용한다. 소시오패스 성향의 그는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지만 뒤에서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누구든 조종하고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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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은 “백아진을 이해하기도 힘들뿐더러 사실 이해하기 싫었던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백아진은 이렇게 행동해’라고 그 자체를 통째로 받아들이려고 했다”고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감정을 극도로 제한하는 소시오패스를 연기한 만큼 어려운 지점도 분명했다. 그는 “연기를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본능적인 감정이 있는데 그걸 숨겨야 할 때 가장 어려웠다. 7∼8회만 봐도 슬픈 이야기지만 그 감정을 백아진이 완전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슬퍼도 그 감정을 다 숨기고 백아진을 연기해야 하는 게 어려웠다”고 떠올렸다.
그렇다고 아예 공감되지 않는 인물은 아니었다. 김유정은 “처음 백아진을 봤을 때 누구보다 처절하게 자기 자신을 위하면서 스스로 나아가려고 하고 그 욕망이 굉장히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인물이라고 느꼈다. 누구나 다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나 행동이 잘못된 인물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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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용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백아진이지만 시청자는 쉽사리 주인공을 욕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 어머니와 도박 중독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가정 내 학대와 방임을 겪고 이어진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해 계모와의 갈등과 소외감까지 경험했다.
학창 시절에도 정상적인 학생 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했고, 스스로 이뤄낸 명문대 진학 기회마저도 아버지가 돈을 빼앗아 좌절하고 만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는 냉혹한 면모는 그녀가 겪은 불행한 삶과 깊은 상처로 인한 생존의 처절함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김유정은 “백아진을 응원하는 의견도 많다는 게 나름 신기했다. 색다르기도 하면서 기분도 좋다”며 “사실 처음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백아진이 전혀 이해도 가지 않고 불쌍하다는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제가 그 상황에 놓이다 보니까 ‘이 아이가 스스로 참 많이 외롭고 힘들겠구나’라는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저는 백아진을 응원하고 싶지 않고 응원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쪽이었다. 공개되고 나서 오히려 백아진을 응원하는 의견이 많이 나오니까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라며 “사실 ‘감히 이 아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라는 말이 감독님과 함께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모티브로 삼았던 대표적인 질문이었다. 그걸 잘 표현해 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질문이 관통해서 작품에서 잘 표현된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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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곁에 있는 남자들을 가스라이팅하며 이용한다. 잠깐의 의붓남매였다가 백아진의 평생을 지키며 그를 구원하려는 윤준서(김영대), 학창시절부터 맹목적으로 돕는 김재오, 공개 연애하며 이용당하는 톱배우 허인강(황인엽) 등이 현혹된다.
김유정은 “제가 바라보는 백아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애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도 ‘친애하는 X’인 것”이라면서도 “물론 보편적인 사랑의 방식은 아니지만 본인만의 정이 존재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윤준서와 김재오와의 관계에서는 또 새롭게 느끼는 감정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나중에 반전으로 보이는 백아진의 감정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또 허인강뿐 아니라 주변 인물인 할머니나 회사 대표 등 엮여 있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훨씬 더 복잡한 관계를 경험하면서 본능적으로 새롭게 느끼는 감정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후반부에도 완전히 사랑은 아니지만 중심이 흔들리는 백아진의 모습이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허인강 역으로 특별출연한 배우 황인엽은 2022년 예능 ‘청춘MT’(tvN)에서 만난 바 있다. 당시 김유정과 작품을 꼭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던 황인엽은 3년이 지나 김유정과 커플 호흡을 맞추게 됐다. 김유정은 “감사하게도 특별출연을 해 주셨는데 저희끼리는 ‘특별히 고생을 많이 한 출연자’라고 얘기를 했었다. 그만큼 분량도 워낙 많았고 캐릭터나 스토리 자체도 마음 아팠다. 그래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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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촬영 시작 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연인 관계가 돼서 깊은 감정의 결로 표현돼야 하는 관계성이었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으려고 대화를 많이 나눴다”며 “실제로 허인강이 등장하는 장면을 찍는 첫 촬영 날에 데이트 신을 거의 다 촬영했다. 감독님께서 빨리 가까워지고 호흡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데이트 신이 몽타주로 나왔어서 앞으로 마음 편하게 촬영해보자고 하셔서 즐겁게 촬영했다”고 돌아봤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백아진을 연기하면서 배우 본인 또한 영향을 받진 않았을까. 김유정은 “오히려 캐릭터가 너무 극단적이다 보니까 (영향이) 덜했던 것 같다. 그래서 캐릭터를 분리시키기가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고 답했다.
다만 “점점 피곤해지고 피폐해지는 감정은 많이 생겼다. (겉으로) 감정을 뿜어낸 게 아니라 안으로 다 담아내려고 했기 때문에 감정적인 소모가 컸다”며 “저의 개인적인 감정들도 표현하지 못해서 촬영 당시에는 답답하면서도 피곤해가는 상황이었는데 백아진이라는 인물에게는 시기상 잘 맞았다. 백아진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피곤해지고 피폐해지고 자신을 갉아먹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게 맞물리면서 더 잘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본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극도로 몰입해 적극적으로 연기를 이어갔다. 8회 윤준서의 엄마 황지선(김유미)가 사과하겠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자 미친 듯이 웃는 백아진의 모습은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감독은 조소하는 느낌의 웃음을 주문했지만 김유정은 “미친 듯이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 컷이 들어가자 발까지 구르며 대본에 없는 장면을 완성해냈다.
그는 “현장에서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아이디어를 낸 장면이 많았다”며 “그 장면에서는 공감을 하기에는 어려운 감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쌓였던 게 상대방의 자극으로 갑자기 본인도 모르게 경멸 등 여러 감정이 터져 나왔을 때 어떤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굉장히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감정이 결여되고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전까지 굉장히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거기서는 확 폭발하는 장면인데 사실은 원래 그렇게 폭발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유미 선배님이 오셔서 같이 맞춰보다 보니까 이 모든 상황을 겪고 난 백아진은 황지선의 말을 듣고 바라봤을 때 ‘자기도 모르던 안에 쌓여 있던 포괄적인 감정이 순간적으로 확 나올 수도 있겠다. 그걸 이 사람한테는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난리를 치게 된 것 같다”고 웃으며 “발 구르는 것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미친 듯이 하다 보니까 감정이 주체가 안 돼서 나온 포인트였다. 어쨌든 상황상으로 봤을 때 황지선이 가다가 멈추게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것도 다 고려해서 여러 가지 방향을 생각하다가 그런 장면이 나왔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그동안의 이미지와는 가장 멀리 있는 캐릭터이자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필모그래피로 추가하게 됐다. 김유정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으로 나오는데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신 것 같다. 배우로서 제일 걱정됐던 부분인데 드라마 반응도 좋아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직까지도 작품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중인 것 같다. 촬영 끝나고 나서 쉬는 시간을 갖고 여행도 갔다 왔는데 캐릭터뿐 아니라 소재나 스토리에서 오는 자극이 있었기 때문에 그거를 털어내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또 방영이 시작되니까 다시금 그때가 떠오르면서 상기된다”며 “백아진이라는 인물을 보내고 나서 그 이후에 활동이나 작품 방향성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할 것 같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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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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