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자녀와 함께 하는 무지개축제가 열린 서울숲공원에서 참가 어린이들이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담은 깃발을 흔들며 풍물패와 길놀이를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아동기본법 제정 촉구’ 연속 기고 ②
김형모 | 한국아동권리학회 회장·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991년 대한민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국제사회에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협약의 이행을 위한 상위 법률이 마련되지 않은 채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아동의 복지를 증진하고 건강한 성장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법의 언어와 구조는 여전히 ‘보호받는 존재로서의 아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동복지법, 영유아보육법, 청소년기본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현행 법률은 각각의 기능과 대상을 중심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이로 인해 아동 정책의 일관성이나 책임 체계가 분산되었고, 국가가 아동의 권리를 총괄적으로 보호·증진해야 한다는 원칙이 제도적으로 구현되지 못했다. 이는 ‘아동 정책의 파편화’이고, 아동기본법 부재로 인한 제도적 공백이 아동 권리 실현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도적 공백은 단순히 법률의 부재를 넘어, 아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동을 ‘어른이 보호해야 할 존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아동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한정시키고, 아동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자연스럽지 않은 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 결과 아동의 참여권, 표현권, 정보접근권과 같은 기본적 권리를 제도 안에서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 기반의 부재는 정책 집행 단계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아동 권리 이행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통합적 지표나 데이터베이스가 부재하기 때문에, 아동 정책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아동참여위원회나 아동친화도시 등이 여러 시·군·구에 존재하지만, 이는 중앙 차원의 법적 의무가 아니라 지방정부의 자율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아동 권리 실현은 지역별로 불균형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가 단위의 체계적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아동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졌다. 보호 중심의 법체계에서는 아동 정책을 주로 위기 아동, 빈곤 아동, 학대 피해 아동 등 특정 집단에 한정해 시행하며, 모든 아동이 평등하게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정신과 괴리가 발생한다. 아동의 목소리가 정책 설계나 평가 과정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아동 정책은 여전히 성인 중심의 관점에서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아동기본법의 제정은 단순한 입법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을 바라보는 국가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아동을 ‘보호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져야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아동기본법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아동을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징이다.
보호 중심의 아동복지법을 넘어 권리 중심의 아동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모든 아동이 존중받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로서 대한민국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며, 아동이 미래가 아닌 ‘현재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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