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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성행위 장면 강제로 찍고 “후회 않는다”… 영화 감독 베르톨루치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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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성행위 장면 강제로 찍고 “후회 않는다”… 영화 감독 베르톨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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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18년 11월 26일 77세
이탈리아 영화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Elisa Caldana  Associazione Culturale Cinemazero

이탈리아 영화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Elisa Caldana Associazione Culturale Cinemazero


1972년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24년 지난 1996년에서야 한국에서 개봉했다. 충격적인 성행위 묘사가 걸림돌이었다. 여성 체모 부분을 희뿌옇게 처리하는 선에서 심의를 통과했다.

우리 당국이 엄숙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 서구에서도 외설 시비가 일었다. 영화를 만든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1941~2018)는 1976년부터 10년간 공민권(시민권)이 박탈됐다. 외설 논란으로 국가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였다.

영화는 변태적 성행위가 주요 장면을 이룬다. 미국 중년 남성 폴(말론 브랜도)이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프랑스 여성 잔(마리아 슈나이더)과 비정상적인 육체 관계를 갖고 끝내 맞이하는 파국을 담았다.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96년 12월 14일자 21면.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96년 12월 14일자 21면.


영화는 35년 후 다시 문제로 떠올랐다. 주연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는 2007년 영국 데일리 메일 인터뷰에서 “촬영 당시 상대역과 감독에게 강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대본에 없던 내용을 촬영 직전 강요당했다”고 폭로했다. 감독 대응이 비난을 더 키웠다. 베르톨루치는 “원하는 걸 얻으려면 완벽하게 자유로워져야 한다. 죄책감은 느끼지만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베르톨루치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유일한 이탈리아 감독이다. 1987년 영화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을 비롯한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해당 부문 상을 모두 받았다. 세 살 때 왕위에 올라 정원사로 삶을 마친 중국 마지막 황제 푸이의 삶을 다뤘다.

영화 '마지막 황제'. 1987년 12월 1일자 16면.

영화 '마지막 황제'. 1987년 12월 1일자 16면.

당시 영화를 소개한 조선일보 기사는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미국·영국·중국·홍콩·일본 등 5개국의 영화인들을 집결시켜 완성한 이 영화는 드러매틱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이어지는 웅장한 스케일의 영상이 관객을 압도한다”(1987년 12월 1일 자 16면)고 평했다.


훗날 이동진 기자는 한계를 지적했다.

“황제로 시작해서 죄수로 전락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소재로 했음에도, 카메라가 그의 내면으로 파고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피상적으로만 관찰한다. (중략) ‘1900년’이나 ‘순응자’처럼 서양을 무대로 한 영화를 만들 때는 그토록 선명하게 정치의식을 드러냈던 베르톨루치가 동양을 소재로 할 때 규격화된 오리엔탈리즘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2006년 11월 4일 자 25면)

2000년 5월 16일자 39면.

2000년 5월 16일자 39면.


2000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32세 정지우 감독은 60세 베르톨루치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베르톨루치는 정 감독을 비롯한 세계 젊은 감독들을 만나 점심을 함께하면서 “아방가르드(전위적인 작품)에 속지 말라”고 조언했다.


“특정 형식 스타일에 대해 아방가르드라고 이름 붙는 순간 이미 그것은 아방가르드가 아니다. 영화제를 위한 영화를 만들지 말라.”(2000년 5월 16일 자 39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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